십이지어사

제3장. 영배의 다리

by 김재호

사고 현장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한 해안 공사장.

바다 냄새와 시멘트 냄새가 한데 뒤섞여, 마치 뜨거운 쇠 위에 소금물을 붓는 듯했다. 태양은 잔인했다. 거리낌 없이 내리쬐는 열기는 세상을 천천히 녹여버릴 듯 강렬했다. 왜곡된 공기층은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했고 그 안의 사람의 의지와 간절함을 시험하는 중이었다. 여름의 이곳은 여러 의미로 생존을 위한 노동을 고민케 했다.


영배는 챙이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땀은 이마에서 턱으로 흘러내리고, 민소매 티셔츠는 이미 흠뻑 젖어 몸에 찰싹 들러붙었다. 그는 몇 번이고 셔츠를 쥐어짜며 숨을 토했다. 마치 인간이 아니라, 태양에 구워지는 조각상 하나가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듯했다.


“이 새끼들 너무하는 거 아냐? 이런 날씨에 일을 시켜? 대궐 같은 집 짓는다고 산 사람을 잡네.”

삽질을 멈춘 인부 하나가 투덜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고, 말끝에는 체념보다 더 짠 울분이 묻어 있었다.

“쉬는 날도 없고. 일정은 또 왜 이렇게 빡빡해.”

그는 물통을 들어 목으로 쏟았다. 냉기가 이미 한참 전에 가신 물이었지만 목구멍을 지나자 잠깐의 생기가 돌아왔다. 옆의 인부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어깨만 으쓱하며 혼잣말처럼 거들었다.

“뭐, 까라면 까야죠. 돈 주는 사람이 하라는데.”

그 말은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서늘하게 들렸다.

“야, 근데 넌 그 도복 바지 좀 벗어라. 땀띠 난다고, 보기만 해도 더워 죽겠어.”

“형님, 죄송해요. 근데 이게 젤 편해요. 어릴 때부터 태권도만 하다 보니 몸이 익숙해져서요.”

영배는 웃으며 허벅지를 툭 쳤다. 도복 바지는 이미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바지는 단순한 작업복이 아니었다. 그의 청춘이자, 자존심이자,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이었다.


땀이 흐르는 얼굴 아래로 한때 전국 대회를 꿈꾸던 소년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그 시절의 영배는 발끝이 바람보다 빨랐고, 심장은 초원을 질주하는 말처럼 뛰었다. 그러나 부상과 현실은 그를 서서히 느리게 만들었고, 결국 상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예전처럼 달릴 수 있으리란 희미한 믿음을 지우지 못했다. 그 믿음이 없으면 하루를 버틸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야, 장씨. 시멘트가 늦는다네. 오다가 큰 사고가 났대. 오늘은 점심 먹고 좀 쉬자.”

누군가의 외침에 공사장 공기가 미묘하게 풀렸다.

“오~ 오래간만에 희소식이네. 젠장, 사고라도 나야 이렇게 쉬는구먼.”

“야, 영배야, 너도 한숨 자라. 연락 오면 부를게. 그때 다시 시작하자고.”

“네. 대신 저녁에 회 한 점 하러 가는 거죠?”

“회는 무슨 회야. 땅을 파봐라 돈이 나오나. 근데 뭐… 시멘트 안 오면 한잔은 해야겠지? 소주는 내가 쏜다.”

영배는 소리 없이 웃었다.

“형님, 우리 일, 진짜 땅 파서 돈 버는 거잖아요. 맞잖아요? 하하.”

“야, 이놈아. 너는 꼭 말끝마다 한 대 치고 싶게 만들어.”

농담은 피로를 잠시 잊게 했다. 대화가 웃음으로 흐르고, 웃음이 땀에 섞였다. 그러나 공기 속에는 알 수 없는 정적이 조금씩 고였다. 먼지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철근이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반짝이고, 공사장의 소음은 잠시 멈춘 듯 느려졌다.


영배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었다. 바닷 내가 스며드는 언덕 끝, 그늘이라곤 벽돌 더미뿐이었다. 그는 벽돌 옆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몸속의 열기와 벽돌의 열기는 누가 더 뜨거운지 경쟁을 했고, 미적지근하고 찝찝한 바람은 누군가의 불쾌한 입김 같았다.

“정말 더워… 오늘은.”

그의 말은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졌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호흡이 길어졌다.


그때였다. 흙더미 속에서 반사된 한 줄기 빛이 눈을 찔렀다.

‘뭐지?’

그는 고단함에 몸이 무거웠지만, 이상하게도 그 반짝임이 마음을 잡아끌었다. 머리는 무시하고 그냥 앉아있으라고 외쳤지만 그와 달리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손끝이 흙을 헤집었다. 싸늘한 금속의 감촉이 느껴지고 곧이어 그가 파낸 것은 작은 원형 금속이었다. 햇빛에 반사된 표면은 생물처럼 미묘하게 숨을 쉬는 듯했고, 한쪽 면에는 희미하게 새겨진 문양이 보였다.

말(馬).

“마패인가? 이런 게 왜 여기에…”

그는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가슴속 어딘가가 미묘하게 떨렸다. 금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단순한 땅의 잔열이 아니었다. 묘한 기시감이 스쳤다. 낯선데, 어딘가 익숙한 감정. 마치 오래전 꿈속에서 이미 본 장면 같았다.

‘이건… 내 거야.’

이유도 근거도 없이, 그런 확신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그는 가방을 열어 그 금속덩어리를 넣고 대신 김밥을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김밥의 밥알이 메마른 입안에 붙었다. 그는 천천히 벽돌에 몸을 기댔다.

“오늘은 그냥 쉬자. 시멘트도 안 올 분위기인데…”

입가에 미소를 남긴 채 눈을 감았다. 잠은 짧고 무거웠다.


바람이 바뀌었다.

언덕 아래 공사장으로부터 미세한 진동이 올라왔다. 가벽 위의 벽돌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와르르르.

벽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와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속에서 희미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


“야, 장씨! 벽이 무너졌어!”

“진짜? 아, 씨발. 누구 다친 거 아니야? 저기는 영배가 자주 쉬던 곳인데.”

인부들이 허둥지둥 달려와 벽돌을 걷어냈다. 안개처럼 피어오른 먼지들 사이로 붉은 피가 장미처럼 피고 있었다.




“으… 으아악!”

비명과 함께 영배가 눈을 떴다. 숨이 목에 걸려 기침이 쏟아졌다. 눈앞은 흰색 천장이었다. 공사장의 소음도, 태양의 열기도 사라졌다. 대신 귓가에는 규칙적인 기계음, 코끝에는 진한 알코올 냄새가 퍼졌다. 병원이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왼쪽 무릎 아래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터졌다.

“아아악!!”

극심한 고통은 순식간에 온몸을 관통했다. 그가 비현실적으로 몸을 비틀며 기절하기 직전에 간호사가 달려왔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선생님 부를게요!”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그 말 사이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간호사가 나가자 기억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이불을 걷었다. 그리고 그 아래를 본 순간 세상은 동굴 속 시커먼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왼쪽 다리가 없었다. 무릎 아래로, 아무것도 없었다. 피부 대신 공기, 살 대신 허공. 뼈 대신 불신.

“아… 아니야.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그는 절망 속에서 허벅지를 두드렸다. 고통이 신경을 찢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 다리… 내 다리 어디 있어!”

문이 벌컥 열렸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왔다.

“진정하세요!”

“이게 뭐야! 내 다리가 없어졌잖아! 내 다리 돌려놔!!”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리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하지만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뇌나 척추에는 손상이 없어요. 다리 하나로 끝났습니다.”

“닥쳐! 그게 무슨 소리야!! 다리 하나라고?”

목소리는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머릿속은 빙글빙글 어지러이 돌았다.


진정제가 주입되자 시야가 좁아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의 마지막 시선이 창문을 스쳤다. 그 바깥에는 뱀 같기도, 사람 같기도 한 그림자가 있었다. 희미하게 구부러진 실루엣, 그것은 단순한 착시가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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