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싱크홀 #2
싱크홀과 교통사고가 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그날 이후로 사고 현장에는 섬 전체의 숨결을 멈추게 하는 정적이 깔려 있었다. 제주 서귀포 해안도로의 한 구간은 여전히 통제 중이었다. 노란 폴리스라인이 느슨하게 늘어서 있고, 그 앞에는 언론사 로고가 붙은 자동차들이 길게 줄을 지었다. 각종 방송국에서 파견된 기자와 카메라맨, 그리고 사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까지,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공포보다 호기심이, 슬픔보다 독점 욕망이 번들거렸다.
“자, 큐!”
스태프의 손짓과 동시에 카메라 앞의 젊은 여자 기자가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멘트를 시작했다.
“여기는 제주 서귀포시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 현장입니다.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바닥 곳곳에 남은 핏자국이 사고의 생생한 잔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학여행 중이던 학생들과 주민들을 포함해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2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되는 싱크홀은 지름 약 8미터, 깊이 20미터 이상으로 추정되며, 현재도 지반 침하 위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특별조사단을 투입해 원인 규명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내놓지 못한 상태입니다. 과연 이번 사고를 단순한 자연재해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인재일까요? 이틀 뒤로 예보된 폭우가 조사 일정에 어떤 변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KSN 뉴스, 최미영 기자입니다.”
멘트가 끝나자, 옆에서 카메라를 내리던 촬영기자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좋아요. 딱 좋아요. 감정 톤도 괜찮고. 근데 미영 씨, 잠깐 쉬어요. 얼굴이 하얘졌어요.”
최미영 기자는 잠시 숨을 고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낯선 남자 하나가 슬쩍 다가왔다. 20대 중후반쯤, 머리는 아무렇게나 자른 듯 산발이었고, 티셔츠에는 ‘Unknown Files’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지워져 있었다.
“기자님, 저기요. 저거 진짜 싱크홀 맞아요?”
“네?”
“그거, 싱크홀 아닌 거 같은데요.”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의심이 아닌, 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흙이랑 바위 구조가 달라요. 여기 밑은 석회암 지대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무너지지 않아요.”
“전문가세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일에 관심이 좀 많죠.”
미영은 그제야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딘가 낯이 익었다.
“잠깐만요... 혹시 ‘미스테리우스’?”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기자는 놀란 눈으로 다시 물었다. “헉, 진짜. 그 블로거?”
“제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네요.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서 사진을 바로 내렸는데.”
그는 주변 기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말이죠,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어요. 싱크홀? 아니요. 이건 단순한 침하가 아니에요. 이건 ‘움직임의 흔적’이에요.”
“‘움직임의 흔적’이라니요?”
“무언가가, 밑에서 지나간 거죠.”
“지나갔다?”
“네.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만.”
미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 말, 방송에서 해도 돼요?”
“글쎄요. 아마 안 될걸요. 방송국이라는 곳은 언제나 진실보다 안전을 택하지 않나요?”
“참나.”
그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이 사건, 생각보다 오래 못 묻힐 겁니다.”
“명함 드릴게요.”
그녀가 명함을 건네자, 그는 휴대폰으로 현장을 촬영하며 떠났다.
싱크홀 바로 옆,
임시로 설치된 천막 안에서는 특별조사단이 열화상 카메라와 지하 탐지기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복장을 보면 지질학자, 토목 엔지니어, 국토부 공무원까지 섞여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모두 같았다. 당황, 피로, 불신.
“아무것도 없어. 지하수가 빠져나갔다고 하기엔 수압 변동이 너무 급격해. 그리고 주변에 그 흔한 단층선도 없어요.”
“결국, 인재라는 건가요?”
“아니, 그것도 애매합니다. 이 지역은 개발 허가 자체가 안 나는 동네라더군요.”
“그럼 뭘까요? 일시적인 자연재해?”
“자연은 이렇게 이유 없이 구멍을 뚫진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때, 누군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석유 냄새 같은 게 계속 올라오는데요.”
“차량 유류 때문이겠죠?”
“글쎄. 아마도 그런 거겠죠?
그들은 손전등을 비춰 아래를 다시 유심히 살폈다.
민수는 싱크홀 주변을 돌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싱크홀 #진실 #정부 #음모 #제주도 #불가사의’
그가 관리하는 Site에는 이미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 밑에서 지옥의 사도들이 올라온다던데요?’
‘사고 당일, 하늘이 붉게 빛났다는 목격담 봤어요.’
‘지진파 형태가 너무 이상함. 누가 뭔가 숨기고 있음.’
그 댓글들을 보며 민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엔. 이번엔 뭔가 달라. 그나저나 그는 어떻게 된 거지?”
자신의 블로그 독자 중 하나였던 ‘갤로우즈’라는 닉네임의 팬. 사고 당일 그는 현장에서 찍은 영상을 보냈고, 그 직후 연락이 끊겼다. 비록 화면이 너무 어둡고 흔들려서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그건 뭐였을까? 아직 남아있는 석유 냄새와 그 안에 섞인 낯선 생명체의 잔향과 묵직한 압박감.’
민수는 코를 씰룩거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이봐! 여기 좀 와봐. 빨리!”
누군가 고함쳤다.
“왜 그래?”
“이거, 사람 팔 같아.!”
조사단원들이 급히 모였다. 싱크홀 가장자리를 따라 무너진 흙더미 속, 흙색과 거의 같은 색의 팔뚝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팔의 끝은 마치 뭔가에 ‘물린 듯’ 찢겨 있었다.
“그 실종자 두 명… 그 사람들 거 아냐?”
“가능성이 높아. 일단 주변 샅샅이 수색하면서 바로 보고 올려.”
그들을 주시하던 주변이 술렁였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 기자들, 주민들. 하나같이 진짜 ‘무언가’를 본 사람들처럼 흥분에 휩싸였다. 셔터 소리와 방송용 드론의 날갯짓이 공기를 갈랐다. 민수는 그 틈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 뭔가가... 있어.. 그리고 이제 시작이야.”
그의 시선이 싱크홀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햇빛이 닿지 않는 그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