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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복잡계, 단순함을 넘어서

1. 과학, 흔들리는 진리를 따라

by 홍종원

수현이 책상 위 개미 몇 마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작디작은 몸들이 바쁘게 오가며 무언가를 나르고 있었다.
“교수님, 저렇게 단순한 곤충들이 어떻게 수천 마리가 질서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최 교수가 미소 지었다.
“바로 그게 복잡계의 매력이에요.
아주 단순한 규칙들이 모이면, 놀라울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복잡계(Complex System)는 단일 요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집단의 행동과 구조를 연구한다.
그 핵심 개념 창발(emergence)이다.
개별 구성원은 단순한 규칙에 따라 움직일 뿐인데,
전체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질서와 패턴이 스스로 드러난다.


개미 군집이 좋은 예다.
각 개미는 ‘냄새를 따라가라’, ‘먹이를 발견하면 흔적을 남겨라’ 같은 단순한 행동만 한다.
그런데 수천, 수만 마리가 동시에 이런 규칙을 반복하면 먹이 경로가 최적화되고, 둥지가 유지되며, 외부의 위협에도 빠르게 대응하는 복잡한 사회 구조가 형성된다.
어느 한 마리도 전체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군집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인간의 뇌도 복잡계인가요?”


“그럼요.
뉴런 하나는 그저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단순한 세포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수천억 개나 모여서 연결망을 이루고,
신호가 얽히고 반복되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죠.
그 속에서 의식도, 창의성도, 감정도 태어납니다.”


복잡계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비선형성이다.
아주 작은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큰 결과를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큰 변화가 의외로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때가 있다.
변화의 크기와 결과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적응성이다.
복잡계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환경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 모습을 바꾼다.
이 적응성 덕분에 복잡계는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변화하고 진화한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다.
중앙에서 지시하거나 설계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단순한 규칙을 따르며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질서와 구조가 생겨난다.
개미 군집이 먹이 길을 찾고, 시장 경제가 가격을 형성하며,
인터넷 네트워크가 흐름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복잡계.png


복잡계의 개념은 현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인터넷의 트래픽 흐름,
도시의 성장 패턴,
주식 시장의 움직임,
사회 여론의 변화.
이 모든 것은 개별 요소의 의도와 무관하게 전체에서 새로운 질서가 스스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 그 누구도 중앙에서 완벽하게 설계하거나 통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십억 명의 이용자가 동시에 정보를 주고받으며,
순간적으로 관심사가 폭발하거나 사라지는 패턴이 나타난다.
해시태그 하나가 전 세계로 퍼지는 속도,
주식 시장에서 투자 심리가 번져가는 모습도 복잡계의 한 단면이다.


수현이 감탄하며 말했다.
“단순한 규칙이 모여서 복잡한 세상을 만든다... 참 역설적이네요.”


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복잡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부분의 합 이상이고, 단순한 규칙 속에서도 예측 못할 질서가 피어난다고요.
변화는 비선형적이고, 질서는 위에서 주어지지 않아도 스스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해하려면 개별 조각만 보지 말고,
그 조각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관계와 상호작용을 봐야 합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와 가능성이 태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복잡계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네요.”


“그렇습니다.
그건 마치, 한 음표 한 음표는 단순하지만,
모이면 심포니가 되는 음악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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