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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튜링,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

1. 과학, 흔들리는 진리를 따라

by 홍종원

수현이 창밖을 보다가 물었다.
"교수님, 인공지능 얘기하다 보면 꼭 나오는 사람이 있죠. 튜링이라고..."


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앨런 튜링(Alan Turing).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알란 튜링.png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암호기 '에니그마'를 해독해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유명하다.
그 이야기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속 튜링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했고,
암호 해독을 위해 고구분투하는 과학자의 집념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고독하게 싸우는 인간의 면모가 함께 그려졌다.


하지만 과학사에서 그의 진짜 업적은 그보다 훨씬 깊다.
그는 처음으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학적으로 정의했고,
현대 컴퓨터 과학의 개념적 토대를 세웠다.


그가 만든 '튜링 기계'라는 가상의 장치는,
모든 계산 가능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이론적 모델이었다.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지... 그걸 어떻게 수학으로 다뤘을까요?"


"튜링은 '계산할 수 있다'는 개념을 명확히 하려고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철학자와 수학자들이 이 문제를 말로만 논의했죠.
그런데 튜링은 그것을 논리와 수학의 언어로 바꿨습니다."


튜링의 질문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했다.


그는 기계가 사람처럼 언어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학습할 수 있을지 탐구했다.
이를 위해 '튜링 테스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기계와 사람이 대화했을 때,
대화 상대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생각한다'라고 볼 수 있다."


수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의 챗봇이나 인공지능이 바로 그 테스트를 통과하려고 하는 거네요?"


"그렇죠.
실제로 몇몇 챗봇은 특정 상황에서 사람을 속일 만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영역에서 사람과 구분이 안 될 정도는 아니죠.
튜링이 제시한 그 문턱은, 여전히 인공지능 연구의 상징적인 목표입니다."


튜링의 삶은 과학만큼이나 극적이었다.
그는 수학자였고, 암호해독가였으며,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 개념의 창시자였다.


그러나 동성애가 범죄였던 시절, 그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법적 박해를 받았다.
그 고통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과학과 진리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수현이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튜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그는 과학이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고뇌와 질문, 실패와 혁신의 기록이라는 걸 보여준 인물입니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묻는 그의 질문은,
지금도 우리가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게 만들죠."


튜링은 단순히 과거의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미래를 먼저 상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가 남긴 질문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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