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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백두산의 호흡

by 홍종원

방 안의 공기가 일제히 바뀌었다. 누군가는 의자를 밀치며 일어섰고, 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고요했지만, 그 너머의 하늘이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늘 너머, 백두산이 있었다.


박민호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연결. 화산재난 국가전면대비령 발령 요청, 지금 즉시.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 번도 발령된 적 없는 명령이, 불과 몇 초 만에 청와대 지하 위기관리센터로 전송되었다. 걸린 시간은 12초. 조용하던 나라의 숨결이 그때부터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군사위성 감시센터.
3호 위성의 적외선 영상이 백두산 정상을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 분화구 근처에서 하얀 기류가 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지하 마그마방에서 밀려 올라오는 수증기 기둥, 살아 있는 ‘호흡의 파동’이었다.


4. 백두산의 호흡.png


“보이십니까?”
감시요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고 있었다.
“저건 자연 증발이 아닙니다. 호흡처럼…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산이 숨을 쉬고 있군.


오전 9시 27분.
전국 모든 스마트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경고음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울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몸체가 같은 신호를 들었다.


[속보] 백두산 화산 이상 징후 감지
현재 북한 북부 지역에서 지진 신호 지속 발생
정부는 화산재난 국가전면대비령 발령
모든 지자체는 즉시 비상체제로 전환하라


사람들은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을 잃었다. 지진도 아니고, 전쟁도 아니었으며, 감염병도 아니었다. 그 어느 것도 아닌, 너무도 생소한 단어 하나가 그들의 세계를 뒤흔들었다.
화산.


도심 한복판, 회색 코트를 입은 노인이 벤치에 앉아 중얼거렸다.
“… 드디어 오는군.


백두산 정상의 무인관측소.
카메라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그날 처음으로 ‘산의 숨결’을 기록하고 있었다. 분화구 깊은 곳에서 뿌연 수증기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의 가슴처럼 천천히 오르내렸다.
수천 년의 잠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생명체가 첫 호흡을 들이마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장비 화면에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활성화 감지〉


백두산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시간도, 이제 그 호흡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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