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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열선

by 홍종원

3월 12일, 오전 9시 17분.
바다가 움찔했다.


먼저 흔들린 것은 수면이 아니었다. 그 아래,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해저였다.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진 지각판이 마치 길게 당겨졌다 놓이는 고무줄처럼 순간적으로 반동했고, 보이지 않던 경계선이 찢어지며 해저 바닥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땅은 흔들린 것이 아니라 ‘튀어 올랐다.’ 그 충격은 소리도 없었고, 경고도 없었다. 지구는 스스로의 살갗을 벗겨내듯, 태평양의 밑바닥을 뒤집고 있었다.


깊은 바다는 갑자기 형체를 잃은 것처럼 울렁거렸고, 그 파문은 수평이 아니라 위로 솟았다. 해저에서 시작된 떨림은 바닷물 전체를 들어 올리며 파면을 일그러뜨렸고, 그 순간 바다는 이미 경계가 사라진 하나의 거대한 힘이 되어 있었다.


도쿄 신주쿠역. 오전 9시 17분 5초.
출근 인파가 지하 플랫폼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기차 언제 오는 거야? 늦으면 지각인데…”
힐을 신은 여성이 불평하듯 말했고, 옆의 남자는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9시 18분 도착이래. 정시 운행.”
전광판은 깜빡이지도 않았고, 스피커에서는 ‘안전 운행을 위해 승강장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라는 안내음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처음의 감각은 ‘흔들림’이 아니었다. 바닥이 ‘들렸다.’
플랫폼 전체가 순간적으로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졌다.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심장이 한 번 박동한 것처럼, 공간이 위로 요동쳤다.


“지진이야!”
외침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형광등이 터지며 불꽃이 튀었다. 전동차는 선로 위에서 미끄러지듯 튕겨 나갔고, 사람들은 균형을 잡지 못한 채 바닥으로 던져졌다. 철제 기둥이 금이 가며 떨렸고, 스피커에서는 안내 방송이 끊긴 채 낮은 전류음만 흘렀다. 한순간, 지하 공간 전체는 금속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같은 시각,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피난 훈련이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아이들이 두 줄로 서서 서로 손을 잡으려던 순간, 땅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흙먼지가 치솟았다.
“엎드려!”
선생님의 외침이 터졌지만, 아이들은 이미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울며 귀를 막았고, 또 어떤 아이는 울음을 멈춘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하늘이 움직여요…”
정말로 하늘이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공기 전체가 진동하며 시야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진동은 발끝에서 시작해 척추로 올라왔고, 도시 전체는 순식간에 무게 중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고치 해안.
파도가 멈췄다. 수면은 바람 한 줄기 없는 거울처럼 평평했다. 그러다 갑자기 바다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결은 사라졌고, 바닷물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조용히 사라져 갔다. 모래밭이 드러나고, 뒤집힌 조개와 펄쩍이는 물고기들이 허공에 노출되었다.
“도망쳐! 쓰나미가 온다!”
몇몇이 소리쳤지만, 대부분은 휴대폰을 들어 그 풍경을 찍었다. 그 순간, 수평선 위에 검은 선 하나가 솟았다. 처음엔 구름 같았지만, 그것은 곧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하나의 ‘벽’이 되었다. 시속 700km의 속도로 돌진하는 물의 장벽이었다. 그것은 파도가 아니라, ‘움직이는 지형’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비명은 물소리에 삼켜지며 사라졌다.


2. 파열선.png


간사이 국제공항.
관제탑의 유리창 밖에서 활주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다가 아니라, 활주로 자체가 바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활주로 침수 시작! 모든 항공기 이륙 중지!”
관제사는 소리쳤지만 교신은 이미 끊겼다. 바닷물이 활주로 위로 역류하듯 밀려오며 항공기 하나가 서서히 기울어졌다. 조종석의 불빛이 깜빡이며 꺼졌다. 공항 전체가 물아래로 들어갔다. 인간의 기술이 바다 앞에서 침묵하는 순간이었다.


도쿄 총리관저, 오전 9시 19분.
“국민 여러분, 현재 일본은—”
총리가 입을 열던 순간, 카메라는 거칠게 흔들리며 꺼졌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정적만이 남았고, 전신주의 전선에서 파직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서울.
그 첫 번째 충격파가 일본 열도를 빠져나와 한반도 아래에서 새로운 균열을 찾아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일상을 살고 있었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진동이 곧, 다른 나라의 시간을 바꾸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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