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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용한 바다

by 홍종원

3월 12일 오전 6시 12분, 시즈오카현 마키노하라의 해안에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해안과 맞닿은 녹차밭에는 바람이 낮게 흐르고 있었고, 잎사귀들은 서로를 스치며 숨결 같은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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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밤사이 내린 이슬을 막 떨쳐낸 듯 촉촉했고, 농부는 허리를 굽힌 채 차나무의 잎을 들어 올려 바람의 결을 읽으려 했다. 그는 잠시 손끝으로 떨리는 잎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놓았다. 잎은 다시 낮게 흔들리며 고요한 파장을 만들었다. 논두렁 위로 돌던 작은 새 떼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날아갔다. 그 이유를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아침의 기온은 17도, 습도 53%. 하늘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햇살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계절의 입구를 열어주는 듯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 뉴스 속 기상 캐스터는 “오늘도 큰 이상 없음”이라며 환하게 웃었고,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평범한 봄의 초입, 평범해야만 할 아침이었다.


같은 시각, 도쿄 도심의 신주쿠역 플랫폼에서는 정장을 입은 회사원들과 검은 교복의 고등학생들이 서로 어깨를 스치며 흘러갔다. 전광판에는 증시 개장 카운트다운과 환율 그래프가 떠 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세 명의 여학생이 서로의 넥타이를 고쳐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늘은 특별할 것 없이 맑았다. 그러나 그 맑음이 주는 고요함은, 이상하리만큼 도시의 소음과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듯했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각, 같은 날 오전 6시 12분.
시즈오카 앞바다의 해양 지진 관측 부이는 1.7mm의 수직 이동을 기록했다. 기준치 안이었기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7시 26분에는 2.4mm, 8시 03분에는 3.1mm. 수치는 인간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상승하고 있었다.


그 시각, 나고야 해양기상센터의 직원 한 명이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파도가 없네요. 마치 바다가 숨을 멈춘 것 같아요.”
그는 알지 못했다. 심해의 신호는 종종 완전한 정적을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지진은 울림이 아니라 침묵으로 먼저 세상에 도착한다는 것을.


같은 시간, 시코쿠 남부 고치의 작은 항구에서는 어부 나카무라 히데오가 새벽 조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래된 엔진에 기름칠을 마친 그는 습관처럼 바다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지나치게 잔잔했다. 수면은 마치 얇은 유리막처럼 평평했고, 그 위에는 바람도 새도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등골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네…”
그는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배에 올랐다. 그 한 걸음이, 그가 아는 일상의 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쓰시마 해협을 지나던 화물선 ‘세이신 마루’의 선장은 항로를 재확인하던 중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했다.
“바다가… 뒤로 물러나고 있어.”
항해사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선장의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조류는 거의 흐르지 않았고, 수면은 먼바다로 밀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해안 쪽으로 미세하게 끌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 누구도 몰랐다. 그 한마디가 곧 동북아 전체의 시간을 바꿔 놓을 신호라는 것을.


아침 8시 57분. 도쿄 증권거래소 개장까지 3분 전.
전광판에는 예상 주가지수와 환율 그래프가 떠 있었고, 스튜디오의 경제 전문가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은 조용한 장이 될 겁니다. 별다른 변동성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이 끝난 순간, 화면은 정지한 듯 고요해졌다.
정확히 20분 뒤, 그 그래프는 다시는 송출되지 않는다.


오전 9시 17분.
지각이 울렸다. 그러나 그 울림은 이 공간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소리 대신, 화면은 하늘을 비춘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도시의 소음이 잠시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새 한 마리가 지평선을 가로질러 천천히 날아간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정적이 곧, 한 나라의 시간을 멈춰 세울 전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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