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후반, 몇몇 전략 문건에서 낯선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지도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어느 나라가 어디에 들어설지를 가정하고 있었다. 국경선이 아니라, 정권 붕괴 이후의 점령선이었다. 북한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면, 어떤 국가가 먼저 움직이고, 누가 어디까지 들어올 것인가. 그 모든 것이 ‘시나리오’라는 이름 아래 작성되었다.
처음엔 조용히, 제한된 연구자들 사이에서 회람되었다.
미국의 RAND 연구소는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그리고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지원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시뮬레이션을 구성했다. 중국의 군사학자들은 조선족 보호와 국경 안정, 난민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북부 산악지대에 대한 한시적 군사 개입을 검토했다. 러시아 전략가들은 자국 국경선 인근의 불안정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개입 범위를 설정했다.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한 곳은 서울도, 평양도 아니었다.
워싱턴, 베이징, 모스크바, 그리고 몇몇 분석센터의 브리핑룸에서, 한반도 북쪽을 네 방향으로 나누는 점선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미국은 평양과 서해안 주요 지역을, 한국은 동남부와 중부 권역을, 중국은 국경을 따라 북부 산악지대를, 러시아는 두만강 인근의 좁은 구역을 관리하는 구도였다. 공식적 통치가 아닌 ‘임시 질서 유지를 위한 영향권’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본질은 분할 점령이었다.
중국은 지리적 근접성과 국경 안정 명분을 내세워, 북부 지역을 가장 먼저 점령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함경북도 북부, 자강도, 량강도에 이르는 산악지대는 난민 발생과 조선족 보호 논리와 맞물리며, 중국의 신속한 진입 대상이 되었다. 이 지역은 ‘한시적 통제’라는 외피를 쓰고, 실질적으로는 중국군과 민간 지원단체가 관리하는 완충지대가 된다.
미국은 서해안과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전략 요충지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핵시설과 지휘통제망, 항만과 공항이 밀집된 이 지역은 비확산 전략의 핵심이자, 국제 안보의 상징적 지점이다. 미국은 단독 개입보다는 한미연합 혹은 유엔 주도의 다국적 연합군 체계를 통해 군사적·외교적 명분을 동시에 갖춘 개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두만강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제한된 작전 구역을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광범위한 점령이 아닌, 자국 연해주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국지적 방어선 확보가 목표다. 러시아의 개입은 가장 소극적이고, 미중 양측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균형자 역할을 자임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남부와 중부 전역에서 실질적인 통합 행정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국토 통합과 주민 행정, 복구와 재건, 치안 회복, 민간 인프라 운영 등 가장 복합적인 임무가 한국의 책임으로 남게 된다. 이 역할은 정치적 주도권이기도 하며, 동시에 가장 많은 부담이 따르는 과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구상이 하나의 지도 위에 그려지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각국의 병력이 동일한 시간, 동일한 지역에 도달할 경우, 누가 먼저 작전을 개시하고 누가 후퇴해야 할지는 단순한 합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 줄의 통신 오류, 통역의 실수, 현장 지휘관의 오판이 심각한 군사적 충돌로 번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경고에 가깝다.
분할 점령은 어느 하나의 국가가 주도하는 일이 아니다.
모두가 자국의 명분을 내세우고, 모두가 혼란을 통제하려 하며, 결국 아무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 그것이 실제 점령 이후 가장 우려되는 장면이다. 명령은 쏟아지고, 지도는 바뀌고, 주민들은 어느 깃발 아래로 피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길 위를 떠돌게 된다.
분할 점령 시나리오는 단지 국가 전략이 아니다.
그 안에는 질서가 무너진 땅을 둘러싼 권력의 공백, 그리고 그 공백을 누구보다 먼저 채우려는 힘의 경쟁이 숨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 지도는 누구의 의사로 그려지는가,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은 그 그림 속 어디에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