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새로운 외교의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오랜 시간 좁은 반도에 갇혀 있던 한국 외교의 시선을 북으로, 그리고 더 넓은 대륙으로 돌렸다.
그가 그리려 한 것은 단순한 외교 다변화가 아니었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새로운 연결의 상상. 그것은 한국 경제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외교적 공간을 확장하려는 전략적 시도였다.
정책은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산업과 에너지 인프라 협력, 교역과 투자 확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통한 평화. 대상국은 러시아를 비롯해 총 9개국. 한 나라의 수출선이 아니라,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통로로서의 외교가 구체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상이 바로 가스, 철도, 전력의 세 가지 연계 사업이었다.
첫 번째는 가스였다.
가스관은 시베리아에서 시작해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연결되는 긴 선이었다. 러시아의 자원을, 그 자원의 일부만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통과해 들어오는 구조로 만드는 것. 그 속엔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남북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가능케 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었다. 북한은 에너지 접근권을 얻고, 통과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파이프라인 하나가 단순한 관이 아니라 분단의 땅을 관통하는 경제적 신뢰의 상징이 되길 바랐다.
두 번째는 철도였다.
경의선과 동해선, 오래전 끊긴 그 선들을 복원하고 북측 철도와 연결하면, 부산에서 출발한 화물열차는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달릴 수 있다. 해상 운송만이 아니라 대륙을 가로지르는 수출 루트, 육로의 길을 여는 것이었다. 북한 역시 처음으로 국제 물류 체계에 편입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끊긴 선을 잇는다는 건, 과거를 회복하고 미래를 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전력망이었다.
러시아 극동 지역의 잉여 전력을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끌어오는 계획. 전기가 흐른다는 것은 단순한 에너지 이동이 아니었다. 신뢰가 필요한 연결, 일정한 속도로 이어져야만 작동하는 공동 시스템이었다. 전선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마비되는 구조. 그래서 이 연결은 단지 전력을 위한 협력이 아니라, 정치적 신뢰의 시험대이자 공동체의 모델이 될 수 있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구상은, 아시아 전역의 전력 연계를 향한 첫걸음이기도 했다.
이 모든 전략은 하나의 전제 위에 놓여 있었다.
남북 관계의 회복과 북핵 문제의 진전. 그리고 국제 질서의 안정.
2018년, 그 전제가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고,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지도를 펼쳐 보였다. 동해, 서해, 비무장지대까지. 한반도를 세 개의 축으로 나누고, 그것을 대륙으로 확장하려는 경제벨트의 구상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을 오래 두지 않았다.
북미 협상은 교착되었고, 팬데믹은 국경을 닫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북방 외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조건, 국제 질서, 남북의 단절된 시간은 다시 정책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멈췄다고 해서, 그것이 헛된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북방정책은 한국 외교가 더 이상 해양만을 바라보지 않고, 대륙과 이어질 수 있다는 상상력을 실천으로 옮긴 첫 시도였다.
분단이 아니라 연결, 경쟁이 아니라 협력.
그것은 하나의 정책이라기보다 한반도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미래에 대한 질문이었다.
신북방정책은 실행보다 방향에서 더 큰 가치를 남겼다. 그리고 그 방향은, 아직도 지도 위 어딘가에서 가능성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