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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깨어나는 땅

by 홍종원

3월 12일, 오전 9시 19분. 부산 해운대.
고층 아파트 외벽 유리창이 갑자기 ‘쨍’ 소리를 내며 거미줄처럼 금이 퍼졌다. 진동은 15초 남짓 짧았지만, 건물 전체를 아래로 끌어당겼다가 위로 밀어 올리는 듯한 비정상적인 파동이 몸의 중심을 흔들었다. 유모차를 끌던 여성이 균형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고, 식당 주방에서는 접시가 연달아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자동문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경보음을 울렸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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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인가요?”
“부산인데… 여긴 일본도 아닌데 왜 이 정도로 흔들리죠?”


잠시의 정적 뒤에 진동은 멈췄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오히려 더 굳어졌다. 진동이 멈춘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멈추기 전의 숨을 들이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곧 휴대전화에서 긴급재난 문자가 동시에 울렸다.
〈일본 난카이 해역 대지진 발생. 한국 남부 지역 일부 진동 감지. 실시간 피해 보고 접수 중.〉


누군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누군가는 바다 쪽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서서히 짓눌리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어딘가에서, 두 번째 파도가 준비되고 있었다.




3월 12일, 오전 9시 20분. 서울 남산 국립지진관측센터.
‘띡.’
관측실 전체가 숨을 멈춘 듯 정적에 잠겼다. 경고음은 단 한 번이었지만, 그 한 번이 평소의 수백 번보다 더 무거웠다. 연구원 이채윤은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파형 그래프는 이미 평온함을 잃고 있었다. 곡선이 30cm 이상 솟구쳐 오르며 매끄럽게 휘어졌다. 마치 지각 전체를 아래에서 누군가가 밀어 올린 것처럼, 단단하고 일관된 압력이 파형에 새겨져 있었다.


“팀장님…”
박민호 팀장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표정은 냉정했지만 눈빛은 이미 결정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날카롭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데이터를 확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진이라면 파형이 흔들려야 해. 그런데 이건…”
그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이건 흔들린 게 아니라, 밑에서 밀어올린 거야. 지각이 뭔가에 떠밀리고 있어.”
그는 다른 화면을 열며 수치를 가리켰다.
“서울 진폭 32cm, 부산은 44cm. 이 정도면… 지하 마그마계가 반응할 수 있다.


그 순간, 자동 감지 시스템이 붉은 경고를 띄웠다.
〈장주기 신호(LPE: Long Period Event) 감지〉


자리에서 일어나던 연구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진앙은... 백두산 아래입니다.”


박민호 팀장은 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 진동의 시작점은, 일본 난카이 해역에서 터진 본진 이후에 생긴 지각 연쇄야. 해저 단층대가 한반도 쪽으로 힘을 밀어 올리고 있고, 지금 백두산이 그걸 받아낸 거야.”


그 한 문장이 방 안의 모든 산소를 앗아갔다.
지금까지의 모든 흔들림은, 이제 시작될 ‘깨어남’의 전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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