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청와대 지하의 국가위기관리센터.
천천히 열리는 회의장 문과 함께 공기가 바뀌었다. 마치 계절의 경계가 바뀌는 순간처럼, 보이지 않는 흐름이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백두산의 첫 호흡에 맞춰, 이제 한반도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지훈 국가안보실장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다섯, 넷, 셋—문이 완전히 열리자, 열여섯 개의 모니터가 동시에 살아났다. 위성 영상, 지진계 데이터, 난카이 대지진 피해 현황이 번갈아 화면을 채우며 지구의 움직임과 국가의 시스템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상황장교가 굳은 표정으로 보고했다.
“백두산 지하 마그마 방 활성화율 12% 증가, 장주기 신호 지속 감지. 북한 북부 통신망 불안정. 중국군, 국경 인근 3개 사단 이동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침을 삼키며 덧붙였다.
“폭발 직전은 아니지만, 진행 경로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서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진은 흔들림으로 시작되지만, 화산은 호흡으로 시작되지요. 백두산이 지금, 그 ‘호흡의 주기’에 들어섰다는 의미입니다.”
방 안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지질의 언어는 곧 국가의 운명이 되었고, 모든 사람은 그 진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윤현우 대통령은 오전 9시 34분, 국무회의실에 조용히 들어섰다. 그의 앞에는 그 어떤 자료도 놓여 있지 않았다. 이제부터 펼쳐질 일은 과거의 보고서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시선은 위성 영상 위로 고정되어 있었다. 백두산 분화구 상공에서 수증기와 미세한 재가 불규칙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언가가 깨어난 것이 분명했다.
“난카이 대지진은 일본의 재난이었지만, 백두산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현실입니다.”
그는 숨을 고른 뒤, 단호하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한반도 전체를 화산 전시체제로 전환합니다.”
회의장 안은 숨소리조차 삼켜진 듯 조용해졌다. 그는 이어서 지시를 내렸다.
“과학기술부는 폭발 시나리오를 네 단계로 정리하십시오. 국방부는 북한 북부 주민의 남하 가능성에 대비한 즉각 대응 계획을 가동하세요. 통일부는 북한 주민을 위한 국제 인도지원 요청 방안을 마련하십시오. 기상청은 공포를 조장하지 않는 선에서 단계별 경계 지침을 국민에게 안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천천히 말을 맺었다.
“이건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국가 대응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 할 사안입니다.”
그 시각, 워싱턴 D.C. 미 국방부 태평양사령부 브리핑룸.
대형 스크린에 백두산 영상이 띄워진 채, 참모진은 침묵 속에서 보고를 듣고 있었다.
“백두산이 분화할 경우, 북한 정권은 즉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핵시설 이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참모는 말을 멈췄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 위기의 중심은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로 옮겨가고 있었다.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북한 북부의 황량한 들판.
붉게 물든 재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군용 트럭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느릿하게 나아갔다. 바퀴는 질퍽한 흙을 지나며 묵직한 흔적을 남겼고, 적재함 위로는 흙빛 군복과 해진 외투가 뒤섞여 있었다.
누가 군인이고, 누가 피난민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모두 말이 없었다. 어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짐을 꼭 움켜쥐었고, 아이들은 어깨에 묻은 재를 손으로 털어내며 무언가를 애써 바라보려 했다.
그중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붉은빛 안개 너머로 황폐한 벌판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 순간, 아이는 무언가를 느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아주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땅이… 숨을 쉬고 있어.”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른들도, 병사들도 그 말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의 발아래, 대지는 분명히 살아 있었고, 지금도 서서히 호흡하고 있었다.
서울 남산 국립지진관측센터. 오전 9시 40분.
박민호 팀장은 파형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마그마 상승 속도, 1분 전 대비 0.2% 증가. 파형의 주기는 여전히 일정합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백두산은 지금 ‘기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청와대에서 긴급 메시지가 하달되었다. 경보 단계 격상. ‘관측’에서 ‘경계’ 단계로. 국가 시스템 전체가 새로운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광화문.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여전히 일상의 동작을 이어가고 있었다. 재난은 이미 시작됐지만, 사람들의 하루는 아직 어제처럼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공기 속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번지고 있었다.
국가위기관리센터.
윤현우 대통령은 중앙 스크린 앞에 서서, 백두산 상공에 점멸하는 붉은 점을 가리켰다.
“일본 지진은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단계입니다. 백두산은 이미 반응하고 있고, 북한 체제가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손을 내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커다란 변화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이 깨어나면, 한반도의 질서도 달라질 겁니다.”
바로 그때,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백두산 정상 아래 지하 3킬로미터 지점의 압력이 18% 상승했다는 보고였다.
서지훈 실장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백두산이… 드디어 첫 숨을 들이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