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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Sep 10. 2018

184 『개선문』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이 소설은 파편에 관한 소설이다.

전쟁의 상흔과 비극의 기억이 파편이 되어 개인의 삶에 어떻게 박혀서 꿈틀대는지, 전쟁이라는 지옥 문 앞에서 개개인이 조각조각의 파편이 되어 어떻게 흩날리는지를 보여준다.

1 p22
이윽고 그 차는 거리 저쪽에 거대한 지옥 문처럼 솟아 있는 개선문을 앞에 두고 멈추어 섰다.

첫번째 세계대전을 경험한 의사 라비크의 인생 여기저기엔 전쟁의 파편이 박혀있다. 파편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고 그 상처는 아물지도 않는다.

1 p113
고독하다는 것, 그것은 인생의 영원한 후렴이 아니던가.

파리의 불법체류자인 라비크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뛰어난 실력으로 대리 수술을 하며 나름 여유롭게 살고 있지만 문득문득 파편들이 튀어나와서는 눈 앞의 모든 것을 압도한다.

1차 대전 중 옆자리에서 죽은 두 친구, 어머니가 강간 당하고 아버지가 살해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소녀, 다리를 절단해서 보험비를 더 받게 해달라는 소년,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나치게 끌려왔다 스스로 목을 맨 연인 시빌.

2 p339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들렸다. 파리의 등화관제라, 파리가. 세상 모든 빛이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1 p151
그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꿈을 꾸는 건, 꿈 없이는 진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1 p180
"당신이 대천사나 바보로 변하든 범죄자로변하든, 아무도 몰라. 그런데 당신 단추가 하나 떨어지면, 누구나 다 그것을 알아."

2 p10
"보체크, 노이만, 군터가 내 이름이었지. 생각나는 대로 말이야. 라비크란 이름은 포기하기 싫었네.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

2 p105
당신은 내 지평선이에요. 내 모든 생각은 당신한테서 끝나요.

2 p130
메마른 냉소주의와 위기의 세월에 쌓아올렸던 장작보다 감정의 불길 위에서 더 타오르기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자신과 시빌을 고문하고 시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게슈타포 하켈을 파리에서 발견하는 라비크. 라비크는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에게 접근해 결국 복수를 하지만...

2 p328
이제는 막다른 구석으로 몰리고 겁에 질려 더 이상 나아갈 수도 없다. 갑자기 그것이 느껴졌다.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공포를, 마지막의 거대하고 침묵하는 공포를 냄새 맡았다. 공포의 냄새를 맡았다.

2 p345
탁자 위에는 반쯤 남은 칼바도스가 놓여 있었다. 한 모금 마셨다. 프랑스 하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오 년 동안의 불안했던 생활. 삼 개월 동안의 감옥살이, 불법 거주, 네 번의 귀환. 오 년 동안의 생활, 그런대로 멋진 생활이었다.

2 p367
"이상해요······. 죽을 수 있다는 게······. 사랑하는데도 말예요······."

2 p382
사방엔 불빛이라곤 없었다. 광장엔 어둠만 짙게 깔려 있었다. 너무 어두워, 개선문조차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연인 조앙이 오발탄 같은 총탄을 맞고 라비크의 품에서 , 어두운 파리의 파편 같은 인생을 마친 날, 2차 대전의 포고가 터진다.

그간 읽은 레마르크의 소설 중 가장 시적이며 완숙한 느낌이다. 이보다 늦게 썼다는 #사랑할때와죽을때보다도 더 중후하다.

언젠가 다시 읽을 수밖에 없을듯 하다.


p.s. 똑같지는 않지만 읽는 내내 빌리 조엘의 <Leningrad>와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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