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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Sep 10. 2018

201 『마징가 계보학』 - 권혁웅

창비시선


⭐⭐⭐⭐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 약전(略傳)> 

1987년의 서울엔 선데이가 따로 없었다 외계에서 온 돌멩이들이 거리를 날아다녔다 TV에서 민머리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한편 한편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힌다. 
그 감촉이 생생하다. 

이런 이야기가 담긴 시는 만져진다. 
시간의 흐름이 남긴 줄기의 자국이 선명하다.

시인의 시도, 고인이 되신 황현산 선생의 평론도 마음에 가득히 자리 잡는다. 

시가 어려운 것은 아마도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기 때문에, 혹은 뭔가(?) 배워서 지니게 된 아는 척이라는 뜰채라도 있어야 하는 그 이질감 떄문일지도 모르는데 이 시집은 그렇지 않다. 

유머로 돌려 쓰지만, 기실 70~90년대의 비극적 자화상. 인권도 정치적 자유도 여성권도 아동학대에 대한 반성도 없었던 폭력과 자학의 시대. 그런 폭력을 지나고 넘어서야만 조금씩 웃을 수 있는 얼마 전의 이야기들. 

이 폭력을 대하는 시인의 유머와 더불어 생동하는 감촉이 가능한 것은 왠지 서글프다. 이 시간과 기억의 지층이 그리 오래 살지 않은 내게도 쌓여있다는 것. 

아물었든 아니든 내게도 그 자국이 있다는 건 서글프다.


<스파이더맨> 

1
거미인간에 관해 말하자 넓은 마당의 위아래, 전후좌우, 동서남북을 샅샅이 훑던 그의 거미손에는 걸리지 않는 게 없었다 그가 손바닥을 펴면 문짝, 신문지, 고장난 석유난로, 콜라병 같은 게 손에 와서 척척 붙었다 동그랗게 부풀어오른 리어카를 끌고 그는 수도 없이 골목을 오르내렸다


<성性의 역사> 

3. 보바리 부인
보바리 부인은 비소를 먹고 죽었다 그녀는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했다


<고스톱에 관한 보고서> 

아버지 혼자 피박과 광박을 다 덮어썼다
병을 깬 직원은 청단처럼 서슬이 파랬고
병에 맞은 아버진 홍단처럼 얼굴이 붉었다
마당의 닭들이 고도리처럼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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