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이 Oct 15. 2018

227 『우는 법을 잊었다』 - 오치아이 게이코

김난주 옮김, 한길사, 일본소설


⭐⭐⭐⭐
p134
"안 돼, 안 돼, 안 돼."
어머니가 신음하듯 목소리를 쥐어짰다.
"싫어, 싫어, 싫어."
갑자기 냄새가 확 풍겼다. 어머니는 쥐어짜듯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한 발 늦게 알았다. 의자에 앚은 채 어머니가 배변을 한 것이었다.

엄마가 흘린 배변을 치우고 아슬아슬한 세계에서도 수치심을 느끼는 엄마를 지극한 연대감과 애정으로 대하는 이 장면을 집이 아닌 어딘가에서 읽었다면... 나도 어쩔 줄을 모르고 먹먹한 감정으로 잠겼을 것이다.

희극인 박나래씨가 다음 생에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더 잘 해줄 거라고 했고, 신애라씨는 입양한 딸을 낳아준 엄마는 태어나지 않게 할 수도 있지만 아이를 지킨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이 생각났다.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는 어머니는 딸 후유코를 '엄마'라고 부른다. 후유코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 자신을 지켜준 미혼모 엄마를 보살핀다.

p144
등 뒤에서 어머니를 껴안고 나도 앉는다. 어머니의 몸이 너무 작았다. 그 작은 몸이 내 품에 얌전히 안겨 있다.
"힘들었지, 엄마."
내가 등 뒤에서 말을 건네자, 어머니는 돌아보는 동작을 했다. 내 양팔 안에서 어머니는 몸의 방향을 천천히 돌린다.
어머니 얼굴은 매끈하고 발긋발긋하다. 미간의 주름은 사라졌다.
"어때, 기분 좋아, 엄마?"
"네에."

역시 할아버지를 일찍 여읜 엄마는 후유코와 특별하고 강한 유대감을 갖는다. 엄마가 읽어주듯이 엄마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딸이 된 엄마가 흘린 주스 자국을 예쁜 무늬가 됐다며 감싸안는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를 중심으로 후유코의 삶을 모자이크처럼 크고 작게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후유코도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걸음을 내디딘다.

p159
"우리 후유코가 착해서 엄마는 정말 기뻐."
"나도 우리 엄마가 착해서 정말 기뻐."

큰 조각 작은 조각들이 떨어지고 난 삶이 허전하지만은 않았다. 개운하고 후련한 기분.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사진처럼 찍힌 엄마와의 시간과 다양한 만남, 이별의 과정이 현실의 발톱을 숨겨줄 만큼이나 생애를 겪는 인간으로서의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고 급변하는 삶의 기습에 다소 수긍하게 해준다.

p.s. 물론 유명 서점 사장인 후유코 같은 경제력과 나름의 건강이 유지되어야만 그런 후련함과 관계의 넉넉함이 남겠지만... � 





















#책추천 #추천 #추천도서 #우는법을잊었다 #오치아이게이코 #한길사 #김난주 #일본소설 #keikoochiai #책 #독서






매거진의 이전글 226 『세대 문제』 - 카를 만하임, 이남석 옮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