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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Nov 29. 2018

260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 권가비 옮김, 책세상


⭐⭐⭐⭐
퇴적된 저자의 과거에 누적시킨 소아성애자 리키의 사건을 교차해서 기록한 이야기다. 퇴적과 누적.

저자는 6살 제러미를 죽인 소아성애자 '리키'를 마주하게 되고 소아성애자 할아버지에게 추행당한 기억이 투명한 벽이 되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한다는걸 깨닫는다.

빌어먹을 과거.

저자는 가족의 침묵, 묵인, 외면이 접착제가 되어 얼기설기 쌓인 상처의 벽돌을 하나씩 해체한다. 그리고 법정과 법정 밖에서 살아온 리키의 삶을 접착제로 해서 다시 쌓아올린다.

손녀를 추행한 할아버지의 짓을 같은 소아성애자였던 리키와 그가 저지른 사건을 통해서 다시 마주하고 극복하는 아이러니.

저자는 절대 용서를 말하지 않는다. 더이상 자신의 삶을 가로막지 않도록 다시 돌아보지 않아도 되게끔 다듬는다.

저자가 겪은 정도는 아니지만 명절마다 변태 친척 노인들이 내 성기를 주무르던 기억이 있다. 내 아래 사촌과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초등학생 때까지 당했고... 노인들은 더러운 줄도 모르고 죽기 전까지 더듬었다. 시골집 안방에서 변태가  집적거리는 동안 주변에 둘러앉은 누구도 내 불쾌감과 불편함을 봐주지 않았고 할머니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용서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저자도 용서하지 않는다.

필요한건 처벌과 비난, 성토나 화해가 아니라 이 기억이 불안하게 남아서 내 삶을 흔들지 않도록, 뒤돌아 보게 하는 덩어리로 남지 않도록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버드 법대를 나오고 법이 근인을 추적하는 방식을 되새겨도 해결되지 않는 어떤 중간지점의 문제를 저자는 법리가 아닌 문학으로 풀어낸다.

자기도 모르게 아이에게 손을 뻗는 자신을 우려해서 계속 교도소에 있게 해달라고 했던 리키에게 아들 제러미를 잃은 엄마 로렐라이는 그가 사형을 모면하게 한다.

배심원들은 의도성을 인정하는 1급 살인을 부정하면서도 정신질환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책임이 없으나 책임이 있다고 평결한 그 중간지점의 모호함이 저자의 표현처럼 인간미의 영역, 틈이 아닐까. 지나갈 수 없던 길을 지나갈 수 있게 해주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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