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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Feb 27. 2016

『설국』
뺨이 달아오르는데 눈만은 차가운

158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문으로 가득찬.

p7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The train came out of the long tunnel into the snow country.



첫 문장으로만 알고있던 <설국>을 드디어 읽게됐다.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명문으로 널리 인정받는다는 그 문장.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다음 문장인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를 오늘에야 읽은 것이다. 

신경숙 표절사태 이후 한국문단의 '미문(美文)주의'가 강력한 비난을 받았는데, 이왕 미문이라면 이 정도 '명문의경지'에는 올라야 정말 미문이 아닐까. 번역문임에도 읽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문맥과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느낌의 단어조차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작가가 쓰면 이렇게도 아름다워진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신경숙이 표절한 것으로 알려진 <우국>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스승이나 정치색은 그렇지 않았다.)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이 명문은 하얗게 비어있는 옆 페이지마저 '설국'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p9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이 고스란히 밤의 눈을 통해 메아리쳐 오는 듯했다.

p12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 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세상이 아닌 상지으이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요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p22
어린 사람이 좋아. 어린 편이 무슨 일이건 실수가 적지,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약간 멍청해도 때묻지 ㅇ낳은 쪽이 좋아. 얘기하고 싶을 땐 당신하고 하겠어. 





유부남 작가인 시마무라와 게이샤 고마코, 시마무라의 눈에 특별히 슬프면서 아름다운 요코.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관계도 아닌듯한 그 평범한 통속 속에서 오직 작가만이 빛난다. 





p113
날개가 단단한 벌레는 한번 뒤집히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마는 조용한 죽음이었으나, 다가가보면 다리나 촉각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p130
눈 속에서 실을 만들어 눈 속에서 짜고 눈으로 씻어 눈 위에서 바랜다. 실을 자아 옷감을 다 짜기까지 모든 일이 눈 속에서 이루어졌다. 

p138
소맷부리가 흘러내려 붉은 속옷 색깔이 두꺼운 유리 너머로 가득 넘쳐와, 추위로 굳어진 시마무라의 눈꺼풀에 스며들었다. 




애인의 속옷이 보이는 것을 '속옷 색깔이 ~ 넘쳐와, ~ 스며들었다'로 적어내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 그대로를 적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살이 붙은 문장이 되었지만, 견고한 성벽처럼 탄탄한 근육처럼 어느 것 하나 떼어낼 수가 없다. 

연애담을 다뤘지만 자극적인 성애는 나오지 않는다. 그다지 많지 않은 접점에서만이 어떤 철학자의 표현처럼 '장갑과 소매 사이로 비치는 하얀 손목'으로서의 '에로스'만이 은밀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p145
뺨이 달아오르는데 눈만은 차갑다. 


'설국'으로 표현된 소설의 배경이자 - 소설에서 여러번 쓰인 표현인 - '국경의 산'들로 싸인 이 고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이 문장일 것이다. 1930년대의 불같은 제국주의의 일본에서 전혀 다른 온도로 차분하기만 한 이 '설국'. 그런 사람들로부터 따로 나와있는 시마무라. 다른 게이샤들의 평범과는 분명 다른 '고마코', 그리고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듯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고장의 토박이 '요코'. 






2002년도 '민음사'에서 '유숙자'씨가 번역한 이 작품은 아직도 1판이다. 내가 읽은 인쇄물은 2015년의 1판 58쇄였다. 이 번역은 14년간 한번도 수정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어로의 번역도 완성도 높게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물론 문학전집이라는 특수성도 있겠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한 레이먼드 카버 소설집 <대성당>의 'Jesus'가 '맙소사'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번역된 비극을 생각할 때 이 번역은 참으로 훌륭하다.


지금 읽히는 <설국>은 `71년도의 네번째 개정판이라고 한다. `37년에 발간한 이 소설을 노벨상을 받은 1968년 이후에도 작가는 계속 다듬은 것이다. 

대표작인 <설국>을 선두로 노벨상을 받은 것은 번역가 Edward Seidensticker의 뛰어난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게 일반적인 평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야스나리의 원문보다 영문번역판이 낫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대단한 영문번역을 가능하게 한 감흥의 뿌리는 분명 원작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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