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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r 17. 2016

180 조용한 밤

모두가 조용한 밤



열두시가 되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조용해진다. 
가까운 소리들이 모두 사라지면 먼데서 소리가 찾아온다. 
술 취한 사람의 술주정과 어떤 여성의 깔깔대는 소리. 
그리고 그마저도 사라지면 어느 터널을 빠져나온 자동차의 아스팔트를 비비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잠이 오지 않아 천장을 향해 눈을 깜빡깜빡하고 있다보면 근처 거리에 사람이 비는 소리가 그렇게 찾아온다.

썰물 빠지듯이 사람이 빠지면 먼곳에서 파도치듯 자동차의 소리가 터널을 들어갔다 나왔다.
오늘 유난스럽게도 소리가 잘 들린다.

시계 소리마저 잠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지나간 하루가 떠오른다.
인생에서 지워져도 아무 일 없을 그냥 그랬던 하루다.

끼니의 두번을 사먹고 한잔의 커피. 
군것질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차를 갖고 나갔는데 앞서 가던 차에 붙어있던 문구.
[이 차에 내 새끼 타고 있다]
'알았다 이 새끼야.'

특별한 연락은 없었다. 
미처 받지 못한 부재중 전화는 어제 남겼던 컴플레인의 답신이었을까.

잠자리 옆에 쌓아놓은 책 네권.
한 권은 재미가 없다. 

세상이 조용해지면 생각이 많아진다.
별일 없는 하루도 곱씹는다.
단물이 나오지 않는데도 씹어본다.

그래도 누군가는 행복했겠고
누군가는 불행했을테고
누군가는 기쁘거나 슬펐겠지
아직까지 일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모든 사람이 각자의 하루를 살았지만 종국엔 같은 밤을 보낸다.
행복하고 불행하고 기쁘고 슬픈 것들을 이제는 조용히 생각하겠지.


이 시간이면 모두가 조용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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