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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r 24. 2016

독서에의 몰입

184 아주 오랜만

 친구가 최근에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책을 읽느라 골방생활이라 했다. 안그래도 휴식이라는 것도 혼자 하는데 여가를 혼자하는 독서로 보내니 말해놓고 서글픔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책을 이렇게 많이 읽어본 게 얼마만인지 되돌아본다. 학생시절이던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시절에도 이렇게 책을 읽지 않았다. 이 정도로 책을 쌓아놓고 읽은 것은 초등학생 시기가 유일하다. 
 
 아파트가 많은 거주지 밀집 구역이지만 근처에 도서관이 없는고로 종로구에서 운영하는 이동문고가 이주에 한번 방문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하늘색과 하얀색으로 칠해진 소형 버스의 뒷문과 한쪽 차벽이 열리면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으로 도착소식을 알려줬다. 실적에 따라 2주에 최대 14권까지 빌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빌려오곤 했다. 생각해보면 봤던 책을 다시 보느라 다양한 책을 읽진 못했다. 유독 자주 빌렸던 책은 <먼나라 이웃나라>와 <남북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삼국지(이문열)>였다. <남북어린이가~ >는 스무권 정도되는 시리즈였는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거대한 소변으로 임진왜란의 일본군을 쓸어버린 이야기나 금 세숫대야인줄 모르는 아낙을 속이려던 사기꾼 행상, 생선 만진 손으로 생선국을 끓인 구두쇠 며느리에게 간장독에 손을 씻지 않았다고 타박했던 독한 시어머니 이야기같은 것들. 인터넷에 찾아보니 대부분 절판이었는데 언제 한번 헌책방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마흔권을 읽어간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세권이고 서점 종이 쇼핑백에 영수증과 함께 들어있는 책이 또 한권이다. <죄와벌> <풀잎관 1>이 휴식중이니 머리맡에 책은 언제나 대기중이다. 

 

 올해 독서는 소설이 주를 이룬다. 예전에는 경제/경영, 인문서가 주였는데 그만 바뀌고 말았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나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비문학을 부러 찾아 읽고는 있지만 형용사와 동사로 녹아드는 소설의 매끄러운 문장에 익숙해져버리니 명사가 나열된 비문학의  문장은 소화시키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근 몇해간 소설을 못 읽었던 터라 길게 보면 이것 또한 균형적인 독서에 닿아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중에서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작가로는 엔도 슈사쿠에 방점을 찍는다. 


 책의 외모로나 소설가를 번역가로 참여시키는 문학동네 전집이 마케팅에서는 돋보이지만 번역과 교열의 질로는 민음사 전집이 두세단계 탁월하다. <번역하는 문장들>에서 말하듯 확실히 소설가와 번역가는 구분된다. 그래서 민음사에 없는 외서는 문학동네가 아닌 펭귄 클래식이나 을유문화사를 찾게 되는데 민음사 전집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눈길 돌릴 일은 거의 없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은 종교에 대한 교집합에 따른 공감대가 소설에 녹아나는 이유도 있지만, 전후 시대의 인물로서 전쟁을 묵묵히 조망하는 시선도 그를 읽게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의 소설에는 양심과 반성이 흐른다. 책을 읽으면 그 흐름에 손과 발을 씻는 기분이 든다. 양심의 무게에 눌려 책을 덮어야만 할 때도 있었다.  다만 앞으로의 독서에 고민이 되는 것은 그의 두 대표작을 이미 읽은지라 다른 작품들에게서 과연 그만한 감동을 찾을 수 있을지... 어쨌든 최근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고르는 고민을 하다 그가 심취했다던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를 집고 말았다. 혹여 대표작만 못해 실망을 할까 걱정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킵캄이 이렇게 와닿는 이미지로 편집될줄이야 ㅋㅋㅋ

 그나저나 <죄와 벌>은 어떻게 해야할지... 용감하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를 2016년의 독서 테마로 정했거늘 <죄와 벌>은 성경책보다 읽기 곤란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연구가인 석영중 교수의 책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를 보면 그가 도박빚이나 지나친 가족부양비를 벌기 위해 굳이 소설을 길게 썼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의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철학자 저리가랄만큼의 생각과 대사를 남발하는 이유가 작가의 돈 때문이었다는건... 어쩄든 어지럽다.


실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한권에는 다른 소설 열권 분량의 고민이 담겨있음이요, 읽는데는 열권 분량의 노력이 필요하다.







 책은 좋은 것이요, 그 책을 벌써 마흔권이나 읽었다는데 스스로 뿌듯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심 이런 독서가 정말 내실을 채우는 지혜와 역량이 될지... 자못 책을 불신하는 경망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쁜 세상사에 책을 읽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읽은 책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주변에 마땅치 않다는게 슬프기도 하다. 도서정가제를 조금 탓하기도 했지만, 삼사만원 식사는 즐기면서 한달에 일이만원도 책에 안 쓰는건 사실 개인의 문제에 가깝다. 
 
 오늘은 한권을 마치는게 목표다. 며칠새 어지럽다고 활자를 멀리했더니 근 이십년만에 찾아온 독서열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걸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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