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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Apr 27. 2018

87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 린이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 린이한 Lin Yi-han,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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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학은 왜 쓰이고 왜 읽게 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곱씹게 만든다. 고통에서 잉태된 이야기. 작가가 자신의 살을 베고 갈라내어 꺼낸 괴물같은 분신.

작가도 독자도 그게 이 세계의 현신이며 자기 자신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고통이 문학의 세례를 받게 되는 이유.

p40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게 무엇을 하든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면 된다. 선생님을 사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작가가 겪은 잔인한 경험, 학원 강사의 소아성애와 현실을 조작해서라도 버텨보려는 안간힘과 권력의 성욕을 은근히 동의하는 유교 문화권의 오래된, 무척이나 오래된 뿌리깊은 망상.

팡쓰치는 유명 문학 강사의 강간과 소아성애를 합리화하려는 그의 집요한 미사여구에서 자신의 현실을 조작해서라도 버티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의 질서는 붕괴된다.

팡쓰치는 자신을 조작해서라도 현실을 살아가려 애쓰지만 팡쓰치의 본능은 정신을 파괴해서라도 자기 존엄성은 구부려질 수 없음을 증명한다.

정신병원에 갇힌 파괴된 그녀의 마지막은 분명 비극이지만 팡쓰치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주도권은 그때가 되어서야 리궈화의 강제에서 해방된다.

동시에 술만 마시면 폭력을 일삼는 부유한 남편과 이혼한 쉬이원. 작가는 현재 대만 여성이 직면한 현실을 관통하려 하지만 이혼과 정신병원이라는 언덕을 넘어가지 않는다.

p218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서 미친 사람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고통은 그저 지나가지 않는다. 단지 균열로 남지도 않는다. 고통은 번식하는 암세포와 같이 끊임없이 전이된다.

최근 읽은 대만,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 소아성애, 원조교제가 여럿 등장했다. 단지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라 맞닥뜨린 문제요 심각하게 외면해온 현실이다.

작가는 남편을 남겨두고 지난 해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통이 머무른 현실을 흘려보내기에 사회는 아직 너무나 더디다는 것에 대한 증거라도 남기려는 듯이 말이다.

팡쓰치와 친구 류이팅, 두 소녀보다 과거를 살았고 과거같은 미래를 사는 쉬이원은 고전 문학을 사랑한다. 여전히 현재를 지배하는 과거의 망령과 싸우는 문학의 투쟁을 목격하게 된다.

이 소설도 비극이라는 이름으로 현실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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