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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Jun 17. 2018

129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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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9
낮게 부는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고, 고요하고 평범한 집들은 길게 이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집이 저기 저 모퉁이에 말없이 서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전기소설, 특히 도박중독자의 불안정하고 나약한 상태로 지낸 독일의 휴양지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동안을 주목하고 있다.

소설 말미의 이 문장처럼 도스토예프키의 삶 중 '가장 어두운 집'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하여

아내 안나의 척추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면은 적나라하다. 물론 그가 겪은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그의 절박한 경제상황을 저당잡고 원고료를 늘 낮게 책정했던 편집자들, 그의 방탕한 노름벽에 등 돌린 당대 문인들의 적대감을 생각하라는 작가 치프킨의 변호도 곳곳에 담겨있다.

p111
그런데, 그러다가 투르게네프가 갑자기 그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구걸을 한 대상을 아내 안나로 한정 짓지만 그는 그가 아는 모든 지인에게 돈을 요청했고, 이럴수가 싶도록 슬프고 비굴하게 쓴 편지는 석영중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돈을위해펜을들다 에서 읽었는데... 적나라하다 못 해 연민을 느끼게 한다.

가장 위대한 작가, 인간의 가장 치열한 지점을 끊임없이 맴돈 도스토예프스키를 끌어 내리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척박하고 불우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소설을 써낸 그에 대한 숙연한 조의와도 같다. 심지어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도 못 하는 정신적 불구 상태의 도박중독자라는 점까지 들어서 말이다.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대와 20세기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 작가의 목소리를 사이사이에 덧붙여 메타 소설의 구조도 보이는데, 비교적 건조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를 대하는 20세기, 정작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와 가족의 고통,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배제하고 그의 겉모습만 전시하는 20세기의 건조한 무관심을 '전시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선 누군가의 채찍질이 느껴진다. 유형지의 스트레스, 종교가 강요하는 도덕적 죄책감, 빈대같은 친척, 궁색한 삶,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기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모습이 누구나의 절망과 다르지 않아서 그가 위대해졌다는건 슬프고 슬픈 아이러니다.

p219
내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소설에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학대갇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던 사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거의 미친 듯이 설파하던 사람이, 잎새 하나와 풀잎 하나하나에 환희에 찬 송가를 바치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수천 년간 쫓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서는 단 한마디의 옹호도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ㆍㆍㆍ 그는 유대인들을 하나의 민족이라고 부르지 않고 '종족'이라고 명명했다.

p.s. 유대인과 관련해서는 2차 대전의 비극이 굉장한 변곡점이 됐으니, 도스토예프스키 당대에 종교적으로도 이단적이었고 경제제으로도 목적과 수단이 달랐던 폐쇄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관점이 전적으로 그의 편견이나 오해라고 보기엔 쩜쩜쩜...

단골 전당포 주인이 유대인이었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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