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p269
낮게 부는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고, 고요하고 평범한 집들은 길게 이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집이 저기 저 모퉁이에 말없이 서 있었다.
ㆍ
도스토예프스키의 전기소설, 특히 도박중독자의 불안정하고 나약한 상태로 지낸 독일의 휴양지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동안을 주목하고 있다.
ㆍ
소설 말미의 이 문장처럼 도스토예프키의 삶 중 '가장 어두운 집'에 관한 이야기다.
ㆍ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하여
ㆍ
아내 안나의 척추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먹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면은 적나라하다. 물론 그가 겪은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그의 절박한 경제상황을 저당잡고 원고료를 늘 낮게 책정했던 편집자들, 그의 방탕한 노름벽에 등 돌린 당대 문인들의 적대감을 생각하라는 작가 치프킨의 변호도 곳곳에 담겨있다.
ㆍ
p111
그런데, 그러다가 투르게네프가 갑자기 그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ㆍ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구걸을 한 대상을 아내 안나로 한정 짓지만 그는 그가 아는 모든 지인에게 돈을 요청했고, 이럴수가 싶도록 슬프고 비굴하게 쓴 편지는 석영중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돈을위해펜을들다 에서 읽었는데... 적나라하다 못 해 연민을 느끼게 한다.
ㆍ
가장 위대한 작가, 인간의 가장 치열한 지점을 끊임없이 맴돈 도스토예프스키를 끌어 내리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척박하고 불우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소설을 써낸 그에 대한 숙연한 조의와도 같다. 심지어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도 못 하는 정신적 불구 상태의 도박중독자라는 점까지 들어서 말이다.
ㆍ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대와 20세기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 작가의 목소리를 사이사이에 덧붙여 메타 소설의 구조도 보이는데, 비교적 건조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를 대하는 20세기, 정작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와 가족의 고통,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배제하고 그의 겉모습만 전시하는 20세기의 건조한 무관심을 '전시한다'.
ㆍ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선 누군가의 채찍질이 느껴진다. 유형지의 스트레스, 종교가 강요하는 도덕적 죄책감, 빈대같은 친척, 궁색한 삶, 실패에 대한 두려움.
ㆍ
거기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모습이 누구나의 절망과 다르지 않아서 그가 위대해졌다는건 슬프고 슬픈 아이러니다.
ㆍ
p219
내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소설에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학대갇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던 사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거의 미친 듯이 설파하던 사람이, 잎새 하나와 풀잎 하나하나에 환희에 찬 송가를 바치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수천 년간 쫓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서는 단 한마디의 옹호도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ㆍㆍㆍ 그는 유대인들을 하나의 민족이라고 부르지 않고 '종족'이라고 명명했다.
ㆍ
p.s. 유대인과 관련해서는 2차 대전의 비극이 굉장한 변곡점이 됐으니, 도스토예프스키 당대에 종교적으로도 이단적이었고 경제제으로도 목적과 수단이 달랐던 폐쇄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관점이 전적으로 그의 편견이나 오해라고 보기엔 쩜쩜쩜...
ㆍ
단골 전당포 주인이 유대인이었을지도요...
ㆍ
ㆍ
#바덴바덴에서의여름 #레오니드치프킨 #민음사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고전 #러시아소설 #책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