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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Jul 24. 2018

144 『모든 저녁이 저물 때』 - 예니 에르펜베크

한길사

⭐⭐⭐⭐
p250
그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몸을 관통하여 계단을 올라

역사를 자신의 십자가로 여기고 이고 가는 작가, 작품들이 있다. #양철북 #전쟁과평화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 #우리가볼수없는모든빛 #소년이온다 #소피의선택 같은 책들이 그러했다. 

이 책도 그렇다.

1, 2차 대전과 동서독 분열의 시간, 통일 독일을 거치는 그 시간을 이고 간다. 어쩌면 지겨울지도 모른다. 또 그 얘기.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면서도 읽게 된다. 읽으면서 이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저녁'을 아직 다 찾지 못한 채 지나온 시간을 생각해 본다.

이 소설은 한 여성이면서 다른 모든 여성들의 삶을 그린다. 한명의 시간이라기엔 모호하게 부정교합되는 닮았지만 서로 다른 사건들은 모순이라기 보다는 당대의 인간사를 품어내는 작가의 마술이며, 시대의 십자가를 이고 가려는 모험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소녀,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 맞아죽은 남편의 기억을 안고 사는 엄마의 엄마, 절망과 가난을 몸을 팔아 극복하는 여성, 택시 안에서의 총성, 다시 작가가 되고 싶은 그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너, 호프만 부인, 죽은 아이와 떠난 남편과 죽은 남편을 견뎌내고 다시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고 소설을 쓰고 위대해진다. 그리고 계단에서 굴러서 죽는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아흔살 생일축하를 받는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그리고 어떤 삶이 가능했을지. 살아남는다면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 남편이 죽었다면, 아니 살아있다면 어떤 삶이 가능했을까. 

이념과 사건, 전쟁의 틈바귀에서 생이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p274
차벨 씨는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곤 했다.

생애주기 마지막에 치매에 걸린 차벨 씨처럼 잊는다는 질병은 두렵고 슬픈 사건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녀, 그리고 수많은 그녀들이 지나온 삶은 잊혀져야 하는가. 아니면 복기해야 마땅한가.

역사와 사건, 비극을 관통한 한 명 한 명을 잊지 말라는 푯말을 등에 지고 오른다. 모든 아침이 그들의 저녁을 관통해서 도착했다.

차분하고 응집된 문장들이 한 명의 삶이자 모두의 삶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희망과 비극을 오간다. 죽지 않았다면... 거길 가지 않았다면, 당신이 살았다면.

그러니까 세상의 빛이 사그라들고 온통 저녁의 어둠으로 침묵이 지배할 때에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낫게 조금은 더 사람답게 견뎌낼 수 있었을지 몰라요.

p.s. 읽는 동안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 자주 떠올랐다
p.s. 오타: p140 10줄 - 죽은 개신교도'과' 가톨릭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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