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바란다.
내 옆에 언제나 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와 많은 것을 함께하며 서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이.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사이.
그런 사이가 따로 있을까?
그게 바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나의 근원인 부모님, 같은 핏줄과 함께 살아가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땐 그게 너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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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에 알았다.
모든 가족이 우리 가족 같지 않다는 것을.
부모님의 모습은 다 달랐고, 환경도 달랐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조차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안심했다.
'나는 내 전부인 가족과 살고 있으니까.’
그 행복은 단단하고 깨지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행복은 조금씩 금이 갔다.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건 아니었다.
처음엔 다시 붙었지만 두 번째는 그대로 깨졌다.
맏이인 나는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같은 시기에 다른 관계들도 떠나갔다.
좋아하던 수학 선생님이 학교를 떠났고, 사랑하던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네가 좋아하면 결국 다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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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상상을 했다.
상대가 죽는 상상, 그것도 늘 “어느 날, 갑자기.”
그 상상이 현실 같아 울었고, 울고 난 뒤에는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
내가 먼저 떠나거나, 상대가 떠나길 기다리거나.
그래서 나는 먼저 떠났다.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서히 연락을 끊는 방식이었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마음속에 누군가를 오래 두는 것이 힘들어졌다.
차라리 단점을 먼저 찾고 미워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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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남편이 차갑게 보일 때면 또 떠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혼하자는 말을 습관처럼 꺼냈다.
남편이 한 번만 더 얘기하면 진짜 끝낼 거라고 했다.
그래도 또 말했다.
헤어짐을 말할 때는 상대를 위함이었지만, 현실을 그려보면 그 누구를 위함도 아니었다.
결국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사과로 끝났다.
예외는 있었다. 아이만은 달랐다.
아이를 떠날 수는 없었다.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다.
내가 바랐던 사랑을 다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마음이 강할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아이를 잃는 상상을 했다.
꿈에도 나왔다.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사고로 크게 다치는 꿈.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옆에서 자는 아이를 확인했다.
안심하고, 그러다 울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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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불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
그게 바로 나였다. 아이나 강아지한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다 큰 내가, 아이까지 있는 내가, 그렇다.
알게 되었으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지 않다.
'지금 내가 버려질까 두려워하는구나’
이런 나를 인지하는 것도 시간이 좀 걸린다.
감정이 너무 커서 압도당한다.
화가 날 때면 이겨내기도 쉬운데 무기력할 때가 문제다. 이겨내기도 싫은 그때가 참, 어렵다.
예전엔 며칠씩 힘들었는데 요즘은 몇 시간 만에 괜찮아지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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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기력해지더라도 끝까지 남아서
상대가 떠나가는 모습을 '진짜' 확인하려고 한다.
혹시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사람 관계는 너무 쉽게 맺고 끊어진다.
"오늘이 우리의 마지말일수도, 아닐 수도 있어.
그렇지만 무겁게 인사하지 말자. 인생 길잖아!"
인사하고 뒤돌아 보며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되고 싶지 않다. 무심하게 살다 보면 누가 옆에 있다가도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거지. 그래도 간절히 바란다.
'평생 함께할 관계만 내 곁에 왔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는 관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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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안다.
내가 떠나지 않는 관계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평생 함께할 관계, 끝까지 내 곁에 있을 사람들.
나는 그 관계를 지키고 싶다.
나의 남편, 나의 아이.
가장 소중한 내 사람들.
내 전부인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