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제 볼까?

거절하던 나, 거절하던 너

by 진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만나던 때가 있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만날 때가 되면 자연스레 만나곤 했다.


“언제쯤 볼래? 이 날 어때?”

“콜.”

혹은 “선약이 있어서 이 날은 어때?”


서로 날짜와 시간, 장소를 조율했다.

모임마다 만나게 되는 주기도 있었다.

“이쯤이면 이 친구를 만날 때가 됐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관계였다.



임신했을 때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배가 무겁고 숨이 차도 어디든 갔다.

출산 후 내 생활이 어떻게 변할지 알면서도,

“마음만 있으면 만날 수 있겠지.”

막연히 다짐했다.


결혼했다고, 아기 낳았다고 변하는 평범한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계획하고 실행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리원에서 퇴소하던 첫날부터 미래가 까마득했다.

아이는 시시때때로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특히 자정과 새벽에 울 때면,

보이지 않는 이웃에게 죄송해 괜히 눈물이 났다.

나는 한순간에 ‘민폐 캐릭터’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엄마들이나 직계 가족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웠다.

동네 엄마들은 아기띠를 하고 수유실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 모였다.

어떤 엄마는 날씨와 상관없이 외출했고,

어떤 엄마는 남편이 있어야만 외출했다.

어떤 엄마는 집이 제일 편하다며 약속에 관심 없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아기 핑계를 대고 약속을 거절하는 건 쉬웠다.

“계속 울다가 이제 겨우 잠들어서 못 나가겠다ㅠ”

“갑자기 기침하네, 쉬어야겠어.”

“새벽에 못 자서 이제 자야 해.”

사실이면서 동시에 핑계였다.

서로가 이해하고 위로하는, 엄마들끼리만 통하는 핑계였다.



그때부터 약속을 거절하는 게 쉬워졌다.

밥 먹듯이 취소했다.

사람 자체에 질린 것도 있었지만 재미가 없었다.


시댁 이야기, 남편 이야기, 아기 이야기…

처음엔 외로움을 달래줬지만 두세 번만 반복돼도 지루했다.

다행히 친구들, 직장동료, 사촌들이 가끔 찾아와 주었다.

정말 좋았지만 매번 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도 가야 했다.


하지만 막상 나가면 집에 오기 바빴다.

피곤했고 할 일이 많았다.

지금 쓰는 이 이야기조차도 사실 핑계다.



거절당하는 나


요즘 나는 거절을 받으면 기분이 너무 나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가볍게, 부담스럽지 않게.


그런데도 거절당하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마치 버림받은 기분이 든다.

결국 상대가 날 싫어해서 피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성이 “아니야,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도

또 다른 이성이 나를 혐오한다.


그래서 다시 다짐한다.

“다시는 먼저 만나자고 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정작 상대가 먼저 만나자고 하면 거절은 못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멀어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단지 우리가 더 깊어지길 바랐다.



예전에 약속을 취소하던 나처럼 소중한 나를.

“버리지 마.”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소중한 사이다.

계속 멀어지기만 하면 결국 우리를 잃게 될 거다.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다시 가까워지자. 예전처럼.



이해는 한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대답한다.

“응,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다음에 보자~ 잘 지내!”


인사는 조금 오랫동안 못 볼 것처럼 한다.

“거절했으니까 오랫동안 못 볼 수도 있지…”

복수심은 아니다.

지금 못 보면 우리는 진짜 당분간 못 보니까.

그 당분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까.


내가 권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관계들에게,

나 자신에게 달래듯 말한다.

“내 마음아, 미련은 이제 좀 버리고 다른 것들로 채워보자.”



사람들과 채워지던 날들은 행복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먹고.

함께.


함께 하는 데서 행복을 찾고 있었는데,

그 행복을 이제 우리 세 가족을 제외하고는 찾기가 참 어렵다.


내가 거절당했다고 한 이 이야기는

누군가는 약속 잡는 과정으로 볼지도,

또 누군가는 조율도 하기 전에 달아나 버린 이야기로 볼지도 모른다.


지금 만날래?

좋아!


밤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관계.

그립다. 그게 정말 좋았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