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평균 온도
불교에서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한 ‘때’에 함께 하지만
그 ‘때’가 지나면 남이 되어 버리는 관계이다.
나에게도 시절 인연이 정말 많았다.
시절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무수히 많다.
한 두 번 만난 관계도 아닌데
이제는 1년, 2년, 3년…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 연락 한 번이 없다.
양쪽 모두 누구도 서운하지 않다.
연락을 해서 만난다는 상상만 해도 어색하다.
할 말도 없고 함께 나눌 공감대도 없다.
그런 닭살 돋는 시간을 이겨낼 이유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 둘 ㅡ 만남을 미루기도 하고
피하다 보니 주위에 남는 사람이 적어졌다.
그 사람들이 일명 ‘내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소중하게 대하게 되었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터전에 와,
자리를 잡고 살아온 지 이제 갓 10년이 되었다.
일하느라 바쁘고 아이 키우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이곳에서도 좁디좁은 인간관계만 소중하게 유지하는 중이다.
물론 노력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바쁜 틈을 내어서 만나기도 했고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은 다 시절 인연일 뿐이었다.
필요에 의해, 상황에 의해 만났던 관계는,
결국 그때뿐이었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새로운 관계에 냉소적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함께 있을 때는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생각해 주지만
의심 어린 예감을 마음 한편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게 진심이 되는 건지, 이중적인 모습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어른 같아서 싫기도 편하기도 하다.
들어오고 나가는 인연의 수가 비슷하면 좋을 텐데
나가는 게 많다 보니 남는 인연에 더 의지하고
과거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날이 많아진다.
들어오는 수가 많을 때면 그렇지가 않은 걸 보면
현재 내 상태를 보면 상황을 확실하게 판단하게 된다.
사람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렵다.
너무 바라면 멀어진다.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반대로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부족하다는 것은 언젠가는 채워진다는 것이다.
당장에는 더 부족해질지라도 말이다.
채워지는 것이 있으면 부족해지는 것도 생긴다.
살이 찔 때는 맛있는 음식과 간식을 먹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그렇지만 늘 몸이 찌뿌둥했고 무거웠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어도 예쁘지도 않았고 더 신경 써서 입어야 했다.
살이 빠지고 나니 아침에 눈뜨면 몸이 가볍고 편하다.
저렴하고 젊은 옷을 사 입어도 괜찮다.
셀카를 찍어도 괜찮고 남이 찍어주는 사진도 괜찮다.
그렇지만 먹는 낙이 없어졌고
먹고 싶은 양만큼 먹는 것을 포기하고
살찌는 음식은 참고 참았다가 한번 먹는다.
그러고도 돼돌아갈 까봐 걱정한다.
모든 세상의 이치가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나쁘다.
사람마다의 온도가 다르지만
그 온도가 정해져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 온도를 항상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흐름이 있는 것만 같다.
조금 나쁜 마음이지만 ㅡ
많은 사람들과 관계에서 사랑이 넘치고 행복한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반대로 “어쩌면 외로움이 클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면 친구 같은 보통 사람처럼 보인다. 너무 관계가 없어서 심심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로부터 순도 높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나 같은 보통 사람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 다,
온도는 다르지만 평균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람 관계가 제일 쉬웠다고 말할지도,
좋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 관계를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직업 때문에 하루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이 때문에 내가 스스로 사적인 관계를 조절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진짜 어쩌면 나의 온도 때문에 내 삶이 조절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민하는 나의 이 시간이 언젠가 다가올 내 시간에 어떠한 이유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때를 위해 좀 더 사색하고 진중하게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시절 인연’ 이 아닌 ‘진짜 인연’을 잘 알아볼 날을 위해.
‘시절 인연’에게 슬픔을 갖지 않을 그날을 위해.
삶이 내게 건네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살아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