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없이 주는 연습
상대가 좋으면 선물을 주고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자꾸 주고 싶다.
보통은 내 마음의 크기와 비례하여 선물의 크기도 달라지곤 하는데
상대의 마음이 어려울수록 가벼운 척,
약간의 연기를 가미하여 준다.
받는 사람이 부담되는 선물은 정말 싫다.
기쁘게만 받아줬으면 한다.
그랬던 바람과는 무색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준만큼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망감은 더 커져가고
보답에 대한 실망이 아닌
사람 자체에 대한 실망감을 숨길 수 없게 된다.
왜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지?
저 사람은 받는 게 당연한가?
내가 별거 아닌 사람인가?
내가 호구인가?
쉽게 선물이라고 칭했지만
그 의미는 물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힘들 때 진심으로 들어줬던 내 진심 어린 마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줬던 내 열정.
외롭고 심심할 때 곁에 있어줬던 내 시간.
소중했던 만큼 베풀었던 아꼈던 내 돈.
‘힘이 들까 봐’ ‘누군가 도와주길 기다릴까 봐’ ‘외로울까 봐’ ‘나라도 있어주면 힘이 될까 봐’
먼저 생각해 줬던 내 진심.
어쩐지 내가 힘들 때는
내 옆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서 슬펐다.
슬픔을 내색하는 것도 미안해서
그저 괜찮은 척했던 내가 잘못인 건지.
나중에서야 “나 그때 많이 힘들었어.”라고 말했을 때
괜스레 더 외로워만 졌다.
우리 모두 사는 게 참 바쁘고 정신이 없다.
다 이해는 하는데 섭섭함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줬던 정성이 아까워졌고 미워졌다.
그래서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기로 결심을 해보기도 했다.
주고 나서 받지 못하면 끊어낼 관계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간단해 보이고 이성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내가 주는 것은 먼저 하지 않게 되었다.
진심을 준 사람에게 내가 진심이 아니어서 부담스러웠다.
그 진심만큼만 적당히 돌려주고 다시 또 받지 않기 위해 도망가버렸다.
언제부턴가 주지도 받지도 않는 관계가 최고다ㅡ
라고 여겼고 주는 것을 당연히 먼저 하지 않았다.
받으면 받은 만큼 단시간 내에 돌려주었다.
나는 나름대로 할 도리를 다 했던 것이다.
다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그 관계가 좋지는 않았다.
적당함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게를 하다 보니, 단골이 늘어났다.
단골들은 내 기술도 좋아했고 나도 좋아했다.
지나가다가 커피도 사 왔고 여행을 다녀오면서 선물도 사 왔다. 직접 만든 음식도 팔찌도 주셨다.
심지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 것을 아시고는 입학 선물도 주셨다.
받아야 했다. 더 잘해드렸다. 부담이 됐다.
주지 말라고도 해봤는데 주고 싶은 분들은 결국은 주셨다.
기분 나쁘게 받을 수는 없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주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준만큼 돌려 달라고 주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그런 선물을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는 그 선물조차도 의무인 것이다. 그럴 때는 의무만 행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 진심으로 주고 싶을 때는
주기만 하면 된다.
주는 내 마음만 생각하는 것이다.
준 상대가 다시 준다면 돌려준 것이 아니다.
그냥 준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준다. 또 받는다.
선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우산을 쓰고 집에 가는 데 어린 남자아이가 비를 맞고 집에 가는 것을 보고 우산을 같이 썼다. 잠깐 뿌듯했고 잊었다. 그리고 며칠 후, 또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우산이 없었다. 우산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나 집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거리여서 그냥 비를 맞고 걸었다. 신기하게 며칠 전에 남자아이에게 우산을 함께 쓰자고 권했던 그 자리에서 어떤 여성분이 같이 쓰자고 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거절할 필요도 없었다. 돌려줄 수도 없는 관계였지만, 돌려주지 않아도 됐다.
어떤 관계에서는 일방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고받는 행위 자체는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주기만 해서 억울하면 그만하면 그만이다.
일방적으로 줄 것만 같은 부모와 받기만 할 것만 같은 자식관계에서 조차도 일방적이지 않다.
뭔가를 서로 주고받는다.
받기만 했던 자식은 언젠가 사랑을 주는 입장이 된다.
누구에게든, 어쩌면 뜻밖의 사람에게라도.
모든 것은 흐른다.
일대일 관계로 모든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당연히 적당히 받았으면 적당히 주면 좋겠지만
받지 못했다고 억울해하지 말자.
내 주위 누군가가 줄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일지도, 10년 후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로부터 다시 받는다.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