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은 무슨 고갠가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4) 방현, 꽃고개, 반고개

by 이무완

땅이름엔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 말이 어떻게든 스미게 마련이다. 한글로 남든 한자로 남든 기록으로 남긴 여러 흔적을 바탕 삼아 읽고 말밑을 풀이하고 다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그 과정에서 비틀림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처음 기록으로 남긴 사람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의도를 담은 데다 뒷사람은 거기에 자기 해석을 덧붙이기 때문이다. 말 전하기 놀이와 같아서 소리바꿈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런 까닭에 땅이름은 글자로만 읽어선 안 된다.


꽃고개? 박고개?

스무 살 안팎의 한창 젊은 때 나이를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는가. ‘방년’(芳年)이라고 한다. 꽃다운 나이. 그러면 ‘방현’(芳峴)은 ‘꽃고개’라고 해야 하나. ≪동해시 지명지≫(2017)에 삼화동에 있는 마을인 ‘방현’을 꽤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삼화동 5개 자연부락 중의 하나였던 마을로서, 무릉과 금곡 마을 및 소학동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산의 북쪽에 위치하며, 서쪽은 용소에 접하고 무릉계가 마을의 중앙을 관통하는데 마을이 자물쇠 형국을 하고 있다고 한다. 두타산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두타산성 지맥이 구 삼화사의 안산인 남산을 이루었고, 그 앞의 너른 들판은 자물쇠 모양의 옥토가 펼쳐진다. (가운데 줄임) 1970년대에 쌍용양회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상촌(上村) 마을이 폐촌되었다. 현재 마을에는 쌍용자원개발사무소가 들어서 있는데, 삼화동 6통 지역이다.(203쪽)


설명은 길지만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마을 이름을 ‘방현’이라고 했는지 알 수 없다. 이미 오래 전 ‘방현’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굳어진 탓인지 전해오는 마을 이름 유래조차 없다. ≪이야기가 있는 삼화≫(홍구보, 동해문화원, 2015, 78쪽)엔 “원래 박고개>방고개>방현 박씨들이 개척했다는 마을”이라고 했다. 생뚱맞다. ‘박씨들이 와서 개척한 마을’이라면 ‘박마을’이나 '박골', '박말'이라고 해야지 어째서 ‘박고개’라고 했을까.

방현.jpg 방현(방고개)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고개 같잖은 반고개

≪동해시 지명지≫ 다른 쪽에서는 ‘반고개/방고개’라는 올림말로 삼아 전혀 다른 설명을 달아놨다.


방현 마을의 청룡부리 끄트머리가 계곡까지 내려와 생긴 고개. 고개가 높지 않아서 붙은 이름이다. 반고개를 방고개로 흔히 발음한다. 이 고개가 마을을 막는 형국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고개를 평탄하게 만들고 길을 내서 왕래하게 되었다. 현재는 쌍용양회 연수원이 들어섰다.(212쪽)


≪조선지형도≫(1917)를 보면 천지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이어지면서 방현 마을 북동쪽으로 야트막한 고개를 이뤘다. 고개가 되다 만 어중간한 고개라는 뜻으로 ‘반고개’라고 했다는 설명에 고개 끄덕여진다. 반고개가 [방고개]로 소리바꿈 한 다음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꽃다울 방(芳) 자, 고개 현(峴) 자를 써서 ‘방현’이 되지 않았을까. 같은 소리이면서 되도록 좋은 뜻으로 뒤치려는 마음은 내남없이 똑같다.

물론 꽃다울 방(芳) 자를 ‘곶’으로 해석해 볼 여지도 있다. 철산(642.1미터)에서 천지봉(294.5미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끝자락인 ‘청룡부리’는 보는 눈에 따라서는 ‘곶’ 아닌가. 금곡천과 전천(삼화천)이 만나는 곳으로 삐죽히 밀고 나온 모양으로만 보면 곶이고 말고다. 곶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라서 ‘곶고개’라고 했다가 소리바꿈이 일어나면서 [꽃고개]로 되자 ‘방현’으로 받아적을 법도 하다. 하지만 ‘반고개’를 말밑으로 보는 해석이 내 보기엔 한결 더 쉽고 더 깔끔하다.



배달말 한입 더

반머슴 머슴은 아니지만 거의 머슴이나 마찬가지로 일을 거드는 사람.

반죽음 죽지 않았지만 거의 죽을 정도가 됨.

반승낙 승낙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러겠다는 정도로 받아들임.

반수둑이 물건이 완전히 마르지 아니하고 반쯤만 마른 정도. 또는 그렇게 된 물건


※ 앞가지로 쓰는 '반(半)-'은 '반쯤 되는 / 거의 비슷한'이란 뜻을 보탠다. 반소매, 반바지, 반만년, 반공일, 반도체, 반수둑이, 반평생 같은 말은 '반쯤 된다'는 뜻이라다. 거기에 견줘 '반머슴, 반죽음, 반사막, 반승낙, 반영구' 같은 말은 '거의 비슷한'이란 뜻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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