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골은 어째서 항골인가?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74)

by 이무완

[일러두기] ‘’이나 ‘’처럼 붉게 쓴 글자는 아래아( •)를 홀소리로 적은 글자다.


항골은 동해시 천곡동의 북서쪽에서 동쪽으로 난 골짜기이면서 그곳에 있는 마을을 가리킨다. 골은 골짜기나 마을을 뜻하는 말이니 딱히 톺아볼 것도 없지만 ‘항’은 무엇을 뜻할까. ≪동해시 지명지≫(2017, 266) 설명에서는 그닥 건질 만한 설명이 없다.


항골/항곡(項谷, 亢谷) 천곡동의 서북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골짜기로서 평릉동과 경계에 있는 골짜기. 옛날 천곡 3리 구역이 된다.


한자로 쓴 항(亢, 項) 자는 둘다 ‘목’으로 새긴다. ‘목’은 ‘통로 가운데 다른 곳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하고 좁은 곳’이란 뜻이다. ‘나들목, 길목, 건널목, 구들목, 노루목’에 나오는 ‘목’이 바로 그것이다. 마을 앉음새를 찬찬히 보면 항골은 초록봉 산줄기들이 동쪽으로 흘러 내려오다가 느릿해지면서 제법 넓게 펼쳐지는 골짜기다. 거꾸로 보면 땅이 좁아드는 곳으로 ‘노루목’이다. 노루목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노루’는 ‘’에서 왔다. 이 말이 ‘>노>노로>노루’로 바뀌어왔다. 자연히 한자로 맞옮김하면서 전혀 생뚱맞은 이름으로 둔갑하는 일도 수두룩하다. 이를테면, ‘노루’를 말 그대로 산짐승인 노루로 여겨 ‘노루, 놀’(獐․장)로 쓴 곳도 있고, ‘노르’나 ‘누르’로 여겨 ‘누렇다’(黃․황)로 바뀐 곳도 있다. 또 ‘너르, 널’으로 여겨 ‘넓다’(廣․광), ‘널’(板․판)로 바뀐 곳도 있고, ‘느르, 느리, 느러, 느릅, 늣’으로 여겨 ‘늘’(於․어), ‘느릅’(楡․유), ‘늘다’(連․연)로 옮겨간 곳도 있으며, ‘’(나루의 옛말)로 여겨 ‘나루’(津․진)가 된 곳도 있다. 그렇게 해서 장항(<노루목), 황산(<누르뫼), 광곡(<너르실), 판곡(<널골), 어흘․어달(<느르뫼), 유령․유치(<느릅재), 연산(<늘미) 같은 여러 땅이름이 생겨났다.


또, ‘항’을 크다, 많다, 넓다는 뜻으로 쓴 옛말 ‘하다’로 보면 ‘항골’은 어쩌면 ‘한골’에서 온 이름일 수도 있다. 이때 ‘한’은 <용비어천가>에 “곶 됴코 여름 하니(꽃 좋고 열매가 많나니)”에 나오는, 바로 그 ‘하다’다. 한밭(큰 밭), 한뫼(큰 산), 한길(큰 길), 한강(큰 강), 한탄(큰 여울), 한재(높은 고개, 큰 재) 같은 말이 그 보기다. ‘한-’은 [황]으로 소리가 바뀌면서 황소나 황새가 되기도 한다. 한쇼는 본디 몸집이 큰 소라는 뜻인데, 오늘날엔 수소(♂)를 가리키는 말로 뜻이 달라졌다. 대체로 수소가 암소보다 몸집이 크고 힘도 세다 보니 ‘한쇼’ 하면 ‘수소’로 여기지만 본디 한쇼는 덩치가 큰 소일 뿐이다. 더러 황소는 누런 소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매우 잘못 아는 것이다. 한새는 ‘한새>환새>황새’로 바뀌었다. 땅이름으로는 경북 합천에 ‘황매산’(黃梅山)이 있는데, 누런 매화가 피는 산이 아니라 그냥 큰 산이라는 뜻이다. ‘한뫼’가 ‘한메>환메>황매’처럼 소리가 달라진 산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눈으로 보면 항골은 큰 마을을 뜻하는 ‘한골’에서 온 말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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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항곡은 어떻게 생겨난 이름일까. 내 보기에 항곡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차츰 좁아드는 목에 있는 마을이다. 노루목 마을이다. 노루목을 ‘노르목골(노르목+골)’으로 여겨 ‘노르목골’이라고 했는데 편하게 ‘목골’로 소리 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목’의 뜻을 살려 ‘항곡’(項谷, 亢谷)으로 되지 않았나 싶다. 생뚱맞게 ‘노르목골’이 ‘노루골>노르골’처럼 되면서 ‘노르’를 ‘황(黃, 누를)’으로 뒤친 ‘황골’이 된 다음 ‘항골’로 굳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거듭 말하거니와, 땅이름은 땅에 엎드려 살던 사람들이 집단지성으로 이루어낸 깨달음이고 땅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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