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2)
‘달팽이산’은 왜 달팽이산일까.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명주목이 북쪽에 ‘달팽이산’이 있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 75쪽)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산’의 옛말인 ‘달’과 ‘마을’을 뜻하는 ‘배미’가 더해져 ‘달배미’라고 했는데, 이 말이 ‘달뱀이’, ‘달뱅이’로 변해 ‘달팽이’가 되었다. 부수베리에서 삿골로 돌아가는 달팽이산 일대 골짜기는 6․25 전쟁 이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이다.(참고: ‘달’은 아래 아(•)를 홀소리로 쓴 글자다.)
‘달’을 땅이름 앞에 쓰면 ‘높다, 크다, 넓다’는 뜻이고, 거꾸로 땅이름 뒤에 쓰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고을(城・邑)을 뜻한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를 따르자면, ‘달배미산’는 ‘높은 데 마을이 있는 산’이 된다. 해발고도가 1,018.4미터에 이르는 산이다. ‘달’은 ‘높고 크다’는 뜻을 넉넉히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뒤따르는 ‘배미’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6․25 전쟁 전까지 사람들이 부데기를 일구며 살던 곳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산자락이나 골짜기이겠다. 하지만 북서쪽 산자락이나 남쪽 달방치 있는 데 말고는 부데기 농사조차도 짓기 어려워 보인다. ‘달배미’는 마을 이름으론 나무랄 데 없지만 산 이름으로 꽤 어색하다. 더욱이 ‘달배미’가 ‘달뱅이’를 거쳐 ‘달팽이’로 되는 소리바꿈도 자연스럽지 않다.
처음으로 돌아가 <조선지형도>(1917)에서 ‘달팽이산’을 찾아보자. ‘달팽이산’은 비좁긴 해도 산마루가 펀펀한 산이다. 이런 산을 가리켜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침 ≪조선지지자료≫(1911)에 ‘月板峙 달판이재’가 보인다. ‘월판치’는 달 월(月) 자, 비탈 판(坂) 자, 고개 치(峙) 자다. <조선지형도>에 나온 ‘달방치(達芳峙)’가 ‘달판이재’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애초 ‘달팽이산’은 ‘달배미산’이 아니라 ‘달판이’나 ‘달판이산’이였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작은 동물로 ‘달팽이’가 있다. ≪구급방언해≫(1466)에는 ‘달파니’로 나오고, ≪훈몽자회≫(1527)엔 ‘달팡이’로, ≪신증유합≫(1576)엔 ‘달판이’로 나온다. 말은 조금씩 바뀌지만 ‘매단다’고 할 때 ‘달다’와 널판지의 ‘판’을 붙여 지어낸 말이 달팽이다. 여기서 판은 달팽이집으로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달팽이는 ‘판을 달고 다니는 동물’이 바로 ‘달팽이’인 셈이다. ‘달팽이’는 우리 눈으로 보는 특징을 매우 잘 붙든 이름이다. 처음엔 ‘달판이,달파니’였는데 혀끝에서 구르고 닳으면서 오늘날 ‘달팽이’로 굳었다.
‘달팽이산’도 ‘달’과 ‘판’을 붙여 만든 산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산마루가 울퉁불퉁한 데 없이 고르게 펴진, 판판한 산이라서 ‘달판이산’이다. ‘판판하다’보다 작고 보드라운 말이 ‘반반하다’다. 달팽이산 남동쪽에 달반니산(599.5m, 동해시 이기동 산 90)이 있다. 이 산도 산마루가 평평하다는 특징이 있다. ≪동해시 지명지≫(동해시, 2017)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애초 이 산 이름도 ‘달판이산’인데, ‘달반이산’을 거쳐 지금의 ‘달반니산’으로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달팽이산’은 달팽이는 말할 것도 없고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 하나하나를 가리키거나 마을 이름으로 쓰는 ‘배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저 산 생김새를 그대로 담아낸 이름일 뿐이다. ‘달’은 높고 큰 땅을 뜻하고, ‘판’은 판판하게 편 산마루를 가리킨다. 산마루가 펀펀한 달, ‘월판치’와 ‘달방치’ 같은 옛 땅이름과 ‘달판이→달팽이’로 이어지는 말의 흐름으로 볼 때 달팽이산은 오랜 시간 우리 입과 귀가 빚어낸 땅이름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