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둘러싼 마을, 괴란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31) 괴란, 골안, 교란

by 이무완

회화나무가 있고 춘란이 많은 마을

망상나들목에서 마루뜰(마상평)을 흐르는 마루내(마상천)를 거슬러 가다가 장전교를 건너면서 오른쪽으로 쑥 들어가면 나오는 마을이 ‘괴란’이다. 마을 이름을 두고 떠도는 이야기가 여럿이다.


괴란동의 지명유래에 대하여는 망상면에서 가장 안쪽 산 밑에 있다고 하여 ‘골안이’라고 불렀던 것이 음변화 하였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예전에는 ‘골안’ 또는 ‘교란’으로도 불렸다고 한다.(윤종대, 동해시 땅이름 이야기, 북퍼브, 2024, 78쪽)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인데, ≪동해시 지명지≫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곧장 고개를 가로젓는다. 조금 길지만 들어본다.


괴란동이라는 지명 유래에 관해서는 망상면 지역 중 산골짜기의 안쪽이 되므로 골안이라 하였는데 이것의 음이 변화하여 된 것이라고들 전한다. 그러나 속지명 골안과 한자 지명 槐蘭과의 사이에는 다소 거리가 있어 신빙성이 적다고 본다. 속지명이 ‘골안’이었다면 당연히 谷內와 같은 한자 표기가 있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숙종 31년(1692)에 마을 이름을 괴란으로 정한 것은 마을 초입에 위치한 서낭당 앞에 槐木 즉, 괴화나무가 있어 槐木街(괴목가)라 했던 데에서 비롯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촌로(村老)들 사이에 때로 구전되곤 하는 이야기는 이 괴목나무에다가 난이 덧붙은 것인데 지명 유래에 관한 한 그럴 듯해 보인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괴목 이외에 또, 망운산(망월봉, 망우리봉) 정상 일대에 난이 폭넓게 지천으로 자생하여 있었으며, 지금도 간혹 난을 채취해 간다고 한다. 따라서 괴란이라는 지명은 이 괴목과 난을 합하여 붙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괴란은 흔히 ‘교란’ 또는 ‘교란이’로 발음하기도 한다.(동해시 지명지, 35~36쪽)


간추리면 ‘골안’이 ‘고란’을 거쳐 ‘괴란’으로 소리 바꿈이 일어났다는 설명은 믿기 어려우며, 마을 어귀에 괴화나무가 서 있어 ‘괴목가’에서 말미암았거나 숙종 31년(1692)에 마을 어귀에 있는 괴화나무의 ‘괴’와 춘란의 ‘란’을 붙여 지어낸 땅이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숙종 31년’이라는 이름 붙인 해를 구체로 밝혀 나름 믿음성을 높였다.

하지만 “속지명이 ‘골안’이었다면 당연히 谷內(곡내)와 같은 한자 표기가 있었을 터”라는 대목은 얼른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글자가 없어서 한자를 빌려 땅이름을 적는 방식은 딱히 정해놓은 규칙이 없다. 소리로도 받아적고 뜻으로도 받아적고, 소리와 뜻소리 섞어 받아적기, 뜻소리로만 받아적기처럼 받아적는 사람 내키는 대로 적었다. 그러니 어떤 곳을 가리키는 땅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말처럼 ‘골안’을 한자 뜻 빌려 적기로 한다면 ‘안’은 내(內)로만 적어야 한다. 하지만 [안] 소리가 나는 한자로 받아적으면 수십 가지 이름이 생겨날 수도 있다. 한편 홍구보는 떠도는 옛이야기에서 말밑을 찾는다.


(…) 한 도사가 마을을 지나는데, 주민들이 이상한 질병을 앓는 모습을 보고 괴목나무를 마을 초입에 심어 보라 권했다. 괴목나무(槐木)는 예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졌고 회화나무, 홰나무라고도 불렀다. 주민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도사가 권하는 대로 괴목나무를 구해 심었는데, 기이하게도 질병이 나았고 그 이후에도 번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마을 북쪽에 있는 망우리봉(마누리봉, 망월봉, 망운산이라 부른다) 일대에 춘란(春蘭)이 자생했는데, 그 향이 천리를 갔다. 마을 사람들은 악귀를 물리치는 나무와, 기개와 절개를 상징하는 춘란이 많은 곳이라 하여 ‘괴란’(망상동 5통)이란 마을 이름을 지었다.(홍구보, 이야기가 있는 망상, 동해문화원, 2017, 103쪽)

동해-망상-괴란_회화나무_죽서루(정선).jpg 정선의 <관동명승첩>(1738) 중 삼척 '죽서루'

선비들이 사랑한 회화나무와 난초

≪훈몽자회≫(1527)에 ‘槐 회홧 괴’라고 나온다. 괴화나무를 우리는 ‘회화나무’라고 했다는 소리다. 괴화(槐花)를 중국 음으로 읽으면 [화이화]로 되는데 이를 ‘회화’로 받아적으면서 ‘회화나무’가 생겨났다. 백성들보다 선비들이 좋아하던 나무다. 정선의 <관동명승첩>(1738)이나 김홍도의 <금강산군첩>(1788)에 삼척 죽서루를 그린 그림이 있다. 오십천 건너편에서 죽서루를 올려다보고 그렸는데, 죽서루 양쪽에 우뚝하게 나무 두 그루를 그렸다. 이 나무가 다름 아닌 ‘회화나무’다.

회화나무 괴(槐) 자는 나무 목(木)과 귀신 귀(鬼)를 붙여 만든 글자라서 ‘귀신 붙은 나무’처럼 느껴져 우리 정서로는 꺼림칙할 법도 한데,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던 줏대없는 선비들은 선비나무, 학자나무라고 해서 오히려 좋아했다. 회화나무를 영어로는 ‘차이니즈 스콜라 트리(Chinese scholar tree)’라고 한다.

회화나무가 학자나무라는 딴 이름을 얻은 까닭도 보면 중국 당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나라 때 과거는 회화나무 꽃이 누렇게 질 무렵에 봤는데 이때를 가리켜 ‘괴추(槐秋)’라고 했다나. 암튼 과거꾼들은 회화나무 꽃이 누렇게 질 무렵엔 과거 급제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회화나무를 심고 가꿨다고 한다.

사군자의 하나인 ‘난’도 선비들이 좋아하던 반려식물 아닌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온 말을 보자.

지초와 난초는 깊은 숲에서 자라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풍기지 않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데 형편이 어렵다 하여 절개나 지조를 꺾지 아니한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옛 선비들은 군자와 같은 절개와 지조를 보여주는 ‘난’을 참 사랑했다. 난은 가지런하면서도 꿋꿋하며 그윽한 향으로 고고한 군자나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상징으로 보고 닮으려고 했다.

길게 말했지만, 회화나무가 어떻고 난초가 어떻고 하는 땅이름 유래는 땅에 엎드려 살던 백성들 입에서 생겨난 마을 이름이 아니다. 백 걸음 물러나 서낭당 앞 회화나무에 난이 붙어 자라는 일이 있었다손 쳐도, 또 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망운봉에서 자라는 춘란 향이 이 마을까지 어쩌다 흘러 내렸다손 쳐도 그런 까닭으로 마을 이름을 붙였을까. ‘괴란’은 본디 백성들이 써온, 오랜 땅이름을 글깨나 읽은 선비가 소리로 받아적은 이름일 뿐이다. 다만 소리에 좋은 뜻을 얹으면서 제 입맛에 맞는 한자로 받아적은 것이다.

동해-망상-괴란_고란과 괴란.jpg 땅이름이 고란인 곳들(위성 사진: 국토지리정보원)

회화나무가 선 서낭당을 지나 있는 마을, 고란

그런 까닭에 ≪동해시 지명지≫가 내친 ≪동해시 땅이름 이야기≫ 설명이 내 보기엔 가장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땅 생김새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골안’은 [고란]으로 소리 나는데, 이곳 말고도 우리 땅 곳곳에 ‘고란’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땅 생김새를 보면 대개 어슷하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고란리’는 길안천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두 산줄기 사이에 마을이 있다. 누구라도 골짜기 안 마을이라서 ‘고란’이 되었다고 고개 끄덕일 만하다. 전남 신안군 도초면에도 ‘고란’이 있다. 고란 마을은 북쪽 용담산(205.9미터)과 동쪽 하니산(179.4미터), 남서쪽 금성산(219.2미터) 사이 평평한 곳에 남동쪽으로 길쭉하게 자리 잡은 마을이다.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에 ‘곡란’이란 곳도 “귀한 난초가 저절로 자란다고 해서 ‘고란’이라고 부르다가 ‘곡란’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골 안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인 땅이름이라는 설명이 한결 믿을 만하다.

망상동 ‘괴란’도 분지인 듯 마을을 빙 둘러 산이 둘러선 곳이다. ‘골안’이라고 이름 붙일 법하다. ‘골안’은 ‘고란, 괴란, 곡란, 난곡, 곡안’ 같은 꼴로 우리 땅 곳곳에 나타난다. ‘골안’이 지역 말 영향으로 [고란], [괴란], [괴라니], [교란], [교라니]처럼 어금지금한 소리바꿈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괴란’으로 적었다고 봐야 한다. 마을 이름이니 좋은 뜻을 담을 요량으로 선비들이 좋아하는 회화나무 괴(槐) 자, 난초 란(蘭) 자를 썼고 이들 한자에 기대 회화나무에 난이 붙어 자랐느니 망우리봉에 춘란이 흔했느니 하는 이야기는 뒷날에 덧붙은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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