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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가 울어서 까차불?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33) 까치불, 까차불, 까치산

by 이무완
팥죽할멈과호랑이.jpg ≪팥죽 할멈과 호랑이≫(서정오 글, 박경진 그림, 보림, 1997)


까치를 사랑한 사람들

우리 조상들은 까치를 좋아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팥죽 할멈과 호랑이≫(서정오 글, 박경진 그림, 보림, 1997)에 보면 장면 장면마다 까치가 할머니를 지키듯 곁에 있다. 호랑이가 감때사나운 탐관오리를 상징한다면 까치는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로 예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삼국사기≫에 석탈해 임금 이야기가 나온다. 경주 동쪽 아진포에서 까치 소리가 나서 가보니 어부가 궤 하나를 싣고 온다. 궤를 열자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가 뒷날 뒷날 탈해왕이 된다는 이야기다.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성씨를 알지 못하는데, 처음 궤짝이 왔을 때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울며 따라 다녔으므로, 까치 ‘작(鵲)’의 글자를 줄여서 ‘석(昔)’으로 씨(氏)를 삼고, 또 궤짝을 열고 나왔으므로 이름을 탈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오늘날 까치는 애써 가꾼 과일을 쪼거나 전봇대에 둥지를 지어 해로운 날짐승으로 쫓겨 다니기 일쑤지만 우리 조상들은 까치를 상서로운 징조로 보았다는 사실이 깔려있다. 새해 첫날 맨 먼저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운수가 좋다고 여기거나 까치가 울면 귀한 손님이나 좋은 소식이 온다고 생각했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옛 마을을 지나며>)


시에서 보듯 감을 딸 때도 겨우살이하는 날짐승을 생각해서 까치밥이라 하여 남겨 두었다. 까치를 시․군․구를 상징하는 새로 삼은 지자체도 많다.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1527)에서도 다르지 않다.


鵲 가치 쟉. 사람들은 ‘희작’(좋은 일을 불러오는 새), ‘영작’(신통한 새)이라고 한다. (鵲 가치 쟉 俗呼 喜-又呼 靈)


우리 조상들이 사람을 돕는 새로 여겼기 때문에 까치산, 까치고개, 까치내, 까치울, 까치섬처럼 땅이름에 ‘까치’가 들었다. 하지만 실제 땅 모양새나 빛깔 따위가 딱 맞아 떨어지는 곳은 드물고 ‘까치’와 어금지금한 소리에 이끌려 ‘까치’ 전설을 보탠 유래가 대부분이다.


땅이름에서 ‘까치’란

‘까치’가 아니라면 땅이름에 쓴 ‘까치’는 무엇일까? 실제 ‘까치’에서 생겨난 땅이름이 없을까마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본줄기에서 뻗어 나와 작게 갈라진 줄기를 가리키는 ‘가지’에서 온 말로 본다. 가령, 충청북도 청양군 대치면 작천리에 있는 ‘까치내’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의 ‘까치내’가 그 보기다.


본래 청양군 동상면의 지역으로서 가지내가 있으므로 가지내, 까치내 또는 지천, 작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개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작천리라 해서 대치면에 편입됨.(청양문화원 ‘작천리’)


본디 ‘가지내’라고 하다가 ‘까치내’가 되고 다시 한자로 가지 지(支)를 쓴 지천, 까치 작(鵲)을 쓴 작천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까치와 아무 상관 없는 소리만 겹칠 뿐이다.


전설에 따르면, ‘까치내’는 ‘흰 까치가 나타난 합수머리’로 해석된다. ‘까치내’의 ‘까치’를 조류의 ‘까치’로 본 것이다. 지금도 합수머리 근방에는 까치가 많이 날아든다고 한다. 까치내는 17세기 후반에 발행된≪동국여지지≫ 등과 같은 지리지에서는 줄곧 작천(鵲川)으로 나오고 있다. 작천(鵲川)은 까치내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디지털충주문화대전 ‘까치내’)


≪청주읍지≫(1899)에 “작천은 고을 북쪽 20리에 있다(鵲川 在州北二十里)”고 적었다. 오늘날 작천은 미호강과 무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쯤으로 좁게 보지만, 미호강을 가리키는 내 이름이었다. 1910년에 이르러 작천은 미호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지금은 미호강이라고 한다. “흰 까치가 나타난 합수머리”라서 새 이름인 ‘까치’로 보았지만, 합수머리는 두 줄기가 모이는 자리다. 물 흐름을 거슬러 상류 쪽으로 보면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자리로 얼마든지 ‘가지내’로 볼 수 있다.

앚의흔적.jpg ≪훈몽자회≫(1527)에서 ‘앛-’의 쓰임을 보여주는 새김들

다른 하나는 옛말 ‘앛-’에서 소리바꿈으로 생겨난 땅이름으로 보는 설명이 있다. 옛말에서 ‘앛-’은 작다는 뜻이 있다. 아자미(앚+어미: 작은어머니), 아자비(앚+아비: 작은아버지), 아찬아들(앛+아들: 조카), 아찬딸(앛+딸:조카딸)의 ‘앚-'은 ‘작다, 덜되다'의 뜻이다. 땅이름에서는 ‘앛-’이 ‘아치’로, 다시 ‘까치’로 소리바꿈이 일어났다고 본다. 가령, 까치설은 ‘앛+설→ 아츠설→ 아치설→ 까치설’처럼 소리바꿈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말로, 설날 전날인 ‘작은설’이라는 뜻이다. 까치보름은 정월 14일로 소보름, 작은보름이라고 했다. 까치고개나 까치섬, 까치산, 까치등*도 마찬가지다. ‘까치’와 엮어 땅이름 유래를 말하지만 그리 높지 않은 고개라서, 자그마한 산이라서, 작은 섬이라서, 조그만 밭이라서 붙인 땅이름일 수도 있다.


까치고개 예전 수목이 울창하고 까치가 많이 살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 ‘작현(鵲峴)’, 다른 말로 ‘가추개’라고 부르기도 하였다.(디지털동작문화대전 ‘까치고개’)


까치섬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연도리에 있는 섬. 섬의 모양이 마치 까치처럼 생긴 데서 부르게 되었으며, 일명 까치섬이라고도 한다.(디지털여수문화대전 ‘작도’)

까치내과 까치섬.jpg 까치내(작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와 까치섬(전남 신안군 암태면)

한편, 말줄기 ‘앛-’의 흔적은 ‘아츰, 아참, 아차’ 따위로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영월 무릉도원면 주천리의 아차치(아침치), 춘천 신북읍 유포리의 아차지(아침못․朝淵)도 ‘앛-’에서 말미암은 땅이름으로 보인다.

아침치는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에 있는 고개다. ≪조선지형도≫(1909~1917)에 ‘아차치(峨嵯峙)’로, ≪조선지지자료≫에는 골 이름에 ‘朝峴/아티’(는 아래아(ㆍ)다), 주막이름에 ‘아차치주막(峨嵯峙酒幕)’이라고 적어놨다. 전하는 말로는 옛날 길손들이 유목정 주막에서 묵었다가 이른 아침에 이 고개를 넘었다 해서 ‘앗촘치→ 아차치→ 아참치→ 아침치’처럼 땅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앛+티’가 ‘앛치(앛峙)’로 된 다음 ‘아차치→ 아참치→ 아침치’로 소리바꿈이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앛티’가 말밑이라면 작은 고개란 뜻이다.

춘천시 신북면 유포리에는 ‘아침못’이 있다. 지금은 ‘조연저수지’라고 한다. ≪춘주지≫(엄황, 1648)에 ‘아차지(峨嵯池)’라고 했고, ≪조선지형도≫(1909~1917)에는 ‘조연(朝淵․아침못)’이라고 했다. 영월 아침치와 마찬가지로 ‘앛못’에서 소리바꿈이 일어나면서 아차지를 거쳐 아참못, 아침못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아마도 주변에 있는 다른 못들에 견줘 조금 작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아침못과 아침치.jpg 춘천시 신북면 유포리 '아침못'과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 '아침치'

까차불은 ‘낮은산’이다

말이 길었다. 동해시에 ‘까차불’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동해시 지명지≫(2017)에 보면 이렇게 말한다.


문고개 북쪽에 있는 산. 산의 모양이 까치의 부리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까치+아(속격 조사, -의)+부리’의 구조로 된 까차부리에서 줄은 말로 추정된다. 삼척으로 가는 기차길 옆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까치들이 많이 날라왔다고 한다.(361쪽)


흐리터분하기 그지 없다. ‘까치의 부리’가 ‘까치아 부리’로, 다시 ‘까차부리’를 거쳐 ‘까차불’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소리에만 기대니까 이렇게 풀 수밖에 없다. 땅 생김새로 살피고, ‘까치’의 말밑까지 두루 톺았더라면 이런 설명으로 그치지 않았으리라.

내 보기에 까차불은 ‘앛(다)+불’에서 생겨난 말로 보인다. 뒤엣말 ‘불’은 산을 뜻하는 ‘부리’의 줄임말이다. 정약용은 ≪아언각비≫(박성수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21, 185쪽)에서 “우리 나라 훈몽 책을 보면 산을 다만 ‘산봉우리’라 하고, 방언으로 ‘부리’라고 한다. (가운데 줄임)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봉우리를 ‘봉’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모두 그 뜻을 ‘부리’라고 한다.”고 했다. ‘부리’는 짐승의 주둥이나 물건 끝이 뾰족한 데를 가리킨다. 짐승의 뿔(角)도 머리에 뾰족하게 솟은 데로, 불을 세게 소리내면 ‘뿔’이 된다. 또, 받침소리를 내지 않고 이음소리로 냈다고 보면, ‘불’은 ‘부르, 부리’처럼 된다. 땅 모양새로 봐도 까치 부리처럼 생긴 곳이 아니라 봉긋하게 솟은 산이기 때문에 작은 불, 다시 말해 낮은 산이다. ‘앛+불→ 아찬불→ 아차설→ 까차불’처럼 바뀌어 왔을 텐데, 말밑이 ‘앛다’에서 온 말인지 희미해지고 소리가 비슷한 ‘가치(까치)’에 이끌리면서 ‘까치, 까차’로 달라졌다고 보는 설명이 한결 설득력이 있다. ‘까치’를 단순히 소리에 홀려 ‘새’로 해석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까치등 “동해시 만우동에 있는데 ‘가치등’을 말한다. ‘까치등이라고도 하는데 군지바우골과 수대골 사이 웃빈내로 가는 고개이다. 예전에는 비천을 오가던 길이다.”(장정룡‧이승철, 동해시 망상동 남구만 유적과 기층문화, 동해문화원, 1998, 191쪽) 이때 ‘까치등’은 산의 등줄기로 작은 고개마루라서 붙은 고개 이름으로 보인다.


배달말 한입 더

까치걸음 「1」 두 발을 모아서 뛰는 종종걸음. 「2」 발뒤꿈치를 들고 살살 걷는 걸음.

까치놀1 먼바다의 수평선에서 흰빛을 띠며 이는 큰 물결.

까치놀2 먼바다의 수평선에서 석양을 받아 번득거리는 노을.

까치발1 발뒤꿈치를 든 발.

까치발2 선반이나 탁자 따위의 널빤지를 버티어 받치기 위하여 수직면에 대는 직각 삼각형 모양의 나무나 쇠. 빗변이 널빤지에서 누르는 힘을 받도록 되어 있다.

까치밥 까치 따위의 날짐승이 먹으라고 따지 않고 몇 개 남겨 두는 감.

까치설날 어린아이의 말로, 설날의 전날 곧 섣달그믐날을 이르는 말. =까치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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