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45) 감자, 감재골, 감저곡, 감자골, 감지
[일러두기] 홀소리인 아래아(·)는 ‘감’처럼 굵고 붉은 글씨로 써다.
1763년 조엄은 조선통신사로 대마도에 간다. 거기서 고구마 종자를 얻어 조선에 가져온다. 조엄은 ≪해사일기≫에서 ‘고구마’를 ‘고귀위마(古貴爲麻)’라고 썼다. 고구마를 가리키는 대마도말 ‘카우카우이모(かうかういも)’를 한자 소리로 빌려 적은 이름이다. ‘고고위마’가 ‘고그이마’를 거쳐 ‘고그마’로 다시 ‘고구마’로 바뀌었다. 물론 이미 ‘고구마’를 가리키는 말로 ‘감저(甘藷)’가 있었다. 한자를 풀어보면 ‘달달한(甘) 마 뿌리(藷)’라는 뜻이다. 그때부터 60년쯤 지나 1824년, 청에서 비로소 감자가 들어온다.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185?)에는 ‘감자’를 ‘북저(北藷), 북감저(北甘藷)’라고 했다. “그 모양이 남저(南藷, 고구마의 딴 이름)와 같이 남다르다. 줄기로 자라지 않고 뿌리가 마와 비슷한데 굵다”고 적었다. 그뒤 ‘감저’는 ‘감재’를 거쳐 ‘감자’로 된다.
‘감저’가 ‘감자’로 바뀐 까닭은 또렷하지 않다. 다만 배달말뿐만 아니라 다른 말에서도 홀소리는 자리에 따라 소리바꿈은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오죽하면 옛 히브리어는 홀소리 바꿈이 하도 잦자 아예 닿소리로만 기록을 남겼다. 지금도 남쪽 지방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로 쓰는 데가 있다. 암튼 이때부터 ‘고구마’를 가리키던 말인 감자는 본래 이름 주인인 고구마 자리를 가로채고 주인 행세를 한다.
동해시 비천동에 감자터, 감재들, 감지골이란 데가 있다. 감자, 감지, 감재라는 말로 보면 ‘감자’와 어떻게든 관련이 있을 듯한 땅이름이다. 동해와 삼척 말로 보면 ‘감자’는 ‘감재’고 ‘감지’다. ≪동해시 지명지≫(2017) 설명은 이렇다.
감지터/감지촌(甘地村) 빈내 본말 아래쪽에 솔밭이 있는 곳의 마을을 가리킨다. 원래 그곳의 터를 지칭했던 감지터(감자터라고도 하고 감재터로도 불린다.) 역시 그곳에 있는 마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된다.(139쪽)
감지평(甘地坪)/감재들 감지터 일대의 들을 가리키는데, 흔히 한자 지명 감지평(甘地坪)으로 많이 부른다.(140쪽)
감지골 감지터에서 서쪽으로 난 골짜기. 감지골은 감재골 또는 감자골이라고 한다. 이 지명은 감자를 많이 재배하던 골짜기라는 데에서 연유했는데 한자로 미화시킨 감지(甘地)라는 지명과 뒤섞이는 바람에 감지, 감자, 감재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둔다. 감자의 영동 방언형은 감재다.(148~149쪽)
≪조선지형도≫(1916)을 보면 ‘감저곡(甘藷谷)’으로 적었는데, 그뒤 1970년대부터 나온 지도들에서는 ‘감자곡’으로 나온다. 국토정보맵(map.ngii.go.kr)에서는 “옛날에 감자가 잘 되었다 하여 감자골이라 한다”고 유래를 말한다.
내 보기에 ≪조선지형도≫의 ‘감저곡’은 ‘감재골’을 ‘감재’와 ‘골’을 붙여 지은 땅이름으로 보았기 때문에 생겨난 땅이름이다. ‘감재’라는 소리를 감자를 뜻하는 ‘감저(甘藷)’로 적으면서부터 ‘감자가 잘 되었다, 감자 농사를 많이 했다’ 같은 유래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감재골’을 ‘감’과 ‘재골’을 붙여 만든 말로 보면 어떨까. ‘재골’은 ‘재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권정생이 쓴 ≪오소리네 집 꽃밭≫(길벗어린이, 2000)은 “이런 날, 잿골 오소리아줌마는 양지볕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불어 오는 회오리바람에 데굴데굴 날려 갔어요” 하고 시작하는 데, ‘재골’을 우리는 흔히 ‘잿골’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재’를 ‘고개’로 생각하지만 본디 ‘재’는 마을을 둘러싼 산을 가리켰다.
≪우리말은 서럽다≫(김수업, 나라말, 2009, 102~103쪽)에서 산을 가리키는 배달말로 ‘갓’과 ‘재’와 ‘뫼’가 있었는데 한자말 ‘산’이 들어와 이들 경계를 뭉개고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갓’은 “집을 짓거나 연장을 만들거나 보를 막을 적에 쓰려고 일부러 가꾸는 뫼”로, ‘재’는 “마을 뒤를 둘러 감싸고 있는 뫼”로 “날마다 오르내리며 밭도 만들고 과수원도 만들어 삶터”로 삼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뫼’는 “이들 ‘갓’과 ‘재’를 싸잡기도 하지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높고 커다란 것을 뜻한다”고 했다. 한자말 ‘산’이 들어와서 ‘재’는 ‘고개’를 뜻하는 말로 오그라든다.
≪조선지형도≫에서 ‘감자골’의 앉음새를 살펴보자. 감재골(감저곡)은 베개네미재, 시루봉, 큰재와 무릅재(슬치), 작은재, 초록산(초록봉, 531m)으로 빙 둘러 막힌 데 있다. ‘재골’이다. 그런데 ‘재골’로만 쓰자니 마을 서쪽에 있는 앞재골, 뒷재골과 헛갈릴 수 있어서 ‘크다, 넓다’는 뜻의 ‘감’을 덧대어 ‘감재골’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감재골’이 ‘감재골’이 된 다음 한자로 적으면서 ‘감저(甘藷)’로 쓰면서 ‘감자’와 얽힌 유래가 생겨난다. 지역말에서 ‘감재’를 ‘감지’라고도 한 까닭에 달 감(甘) 자, 땅 지(地) 자를 써서 ‘감지곡’이란 새로운 땅이름을 지어내었으리라.
우리는 말로써 세상을 바라본다. 말에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우리네 느낌과 생각과 뜻이 담긴다. ‘감재골’은 애초 ‘재 아래 있는 큰 마을’이란 뜻인데 백성들 입말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먹물들 글말로 적으면서 ‘감저곡’으로 뒤틀리고 ‘감지곡’으로 빗나갔다고 하겠다.
감자 놓다 동해나 삼척 지역에서는 감자를 ‘심는다’(심군다, 싱군다)고 하지 않고 ‘놓는다’고 한다. 아마도 감자를 심을 때 감자 눈이 있는 데가 하늘을 보게 놓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해와 삼척 말에 ‘감자 놓을 때’라는 말도 있는데, 보릿고개와 어금지금한 말이다. 겨울이 지나고 3월에 감자를 놓을 때 감자 눈이 있는 데를 따고 남은 감자를 ‘감자무거리’라고 해서 밥 안칠 때 먹기도 했다.
감자 파다 감자 알이 굵어 캘 때는 ‘캔다’고 하지 않고 ‘판다’고 했다.
구둥감재 ‘돼지감자’를 가리키는 동해와 삼척 말이다. 밭둑이나 마당귀에 난데없이 나서 ‘뚱딴지’라고도 한다. 땅속줄기가 감자처럼 울퉁불퉁하다. 눈만 남아 있으면 싹이 난다. 조금 단 듯하지만 별 맛은 없다. 요즘엔 얇게 썰어 말린 뒤 차로 마시기도 한다. '구둥'이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흐리터분하다.
잿마루 재의 맨 꼭대기
잿길 재에 난 길. 또는 언덕바지에 난 길.
잿골 재를 담아 두는 독. 잿물을 내리는 데에 쓰며 흔히 깨지거나 금이 간 독을 사용한다. =잿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