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새’는 어떻게 ‘소초’가 되었나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54) 소새, 소초, 치악산

by 이무완

이름은 가볍게 고칠 수 없거늘


의정부에서 아뢰길, “무릇 이름은 내남없이 부모와 어른들이 지어준 것으로 가볍게 고칠 수 없거늘, 하물며 이름이 벼슬아치 명부에 오른 사람은 더욱더 쉽게 이름을 바꿔선 안될 일이온데, 예문관에서 마음대로 이름을 고치도록 허락하는 문서(牒)를 내주니, 죄를 지은 사람이나 절실하지 않은 까닭을 들어 이름을 가볍고 쉽게 바꾸니, 앞으로는 벼슬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바꿔야 할 때는 이조에서 의정부에 아뢴 뒤에라야 예문관에서 허락하는 문서를 주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글쓴이가 고쳐 씀)


조선 세종 31년 음력 3월 19일치 ≪조선왕조실록≫ 두 번째 기사다. 시쳇말로 ‘신분 세탁’을 막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승정원일기≫에도 개명을 허가했다는 기록들이 나온다. 대개 임금이나 세자 이름 자와 같거나 역적들과 이름이 비슷한 때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우리 정서로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함부로 쓰거나 바꾸는 일은 매우 불효한 일로 보았다. 부모가 준 이름을 더럽히면 집안을 욕보이는 일로 여겨 어려서는 아명으로, 상투 틀고 갓을 쓰면 자(字)나 ‘추사, 다산, 율곡, 퇴계, 단원’ 같은 호(號)를 썼다. 그러니 부모가 준 이름을 새 이름을 바꾸는 일은 웬만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이라고 다를까. 대부분 부모가 지어준 이름으로 평생을 산다. 개인 이름이 그럴진대 언중의 세계관을 담은 땅이름 바꾸는 일은 오죽할까.

그런데 며칠 전 한 지역 신문에 보니, 원주시 소초면 주민들이 면 이름을 바꾸자고 원주시에 제안했다는 기사가 있다. 누구라도 한 번 들으면 단번에 알아들을 만한 ‘치악산면’으로 바꾸면 지역 정체성도 높아지고 관광객도 더 많이 불러 들일 수 있지 않겠냐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자 이웃한 횡성군 강림면 주민들이 어찌 치악산이 니들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는 게 기사 졸가리다.

001_[경향신문] '고유지명 독점 불가'인데 원주 '치악산면' 개칭 시도…횡성 '부글'-전국 14면-20250530.jpg [경향신문] 2025. 5. 30. 14면, '고유지명 독점 불가'인데 원주 '치악산면' 개칭 시도…횡성 '부글'


소초와 소새, 그리고 소새바위

국립공원 누리집에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동쪽은 횡성군, 서쪽은 원주시와 접하고 있다"고 말한 데서 보듯 치악산은 원주시 소초면 산으로만 볼 수 없다. 물론 치악산 주봉인 비로봉 주소가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산 33'라고 부르대겠지만, 이어진 산과 강, 내를 어찌 금 긋듯 내 것 네 것으로 가를 수 있단 말인가.

원주시청 ‘지명유래’에서 ‘소초면’과 ‘소새바위’를 찾으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초면] 원래 원성군 9면의 하나로 흥양리의 소새바위의 이름을 따서 소초면이라 하였다. (……) 소초면이라는 명칭은 현재까지 한번도 변경된 사실이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새바위] 살여울 앞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소새바우라고도 한다. 모양이 쇠새(소의 머리, 소의 혀, 물총새)처럼 생기었다 하여 유래하였다.


‘소초’라는 땅이름은 살여울(시탄ㆍ矢灘) 앞에 있는 바위인 ‘소새바위’에서 따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새바위’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원주 이씨 시탄파 집안에 늘 허구한 날 손님이 들끓으니 여자들이야 오죽 힘들었을까. 하루는 어느 스님이 왔길래 며느리가 신세타령을 하면서 어떻게 방도가 없겠냐고 물었지. 그러곤 일러준 방법이 마을 어귀에 있는 바위를 깨뜨리고 바위를 올려놓으면 손님 발길이 뚝 끊어질 거라고 일러주곤 휭하니 가버렸지. 며느리는 석수장이를 불러다 바위를 깨뜨리고 둥그런 바위를 올려놓았더니 거짓말처럼 찾아오는 손님이 뚝 끊겼는데, 아이고, 손님이 찾아오지 않자 그만 집안도 폭삭 망했다고 그래. (글쓴이가 고쳐 씀)

소새바위_원주 소초 흥양01.jpg 소새바위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이 비슷한 전설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다른 ‘소새바우’ 마을에도 있다. 진암, 지암이라고도 하는 태장동 영진2차아파트 맞은편 마을이다. 이 마을 앞 개울가에도 둘로 쩍 쪼개진 소새바우가 있다.

이들 이야기는 땅이름을 설명한 유래로 보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집안에 여자를 잘못 들여 쫄딱 망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렇다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라서 내버려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이야기 짜임이 엉성하고 오늘날 정서하고는 맞지 않는 대목이 있긴 해도 구비문학 유산으로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

소새바위는 ‘소의 혀(새), 소의 머리, 물총새’를 닮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보아야 소 혀나 소 머리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 보기에 ‘소새바위’라는 이름을 보고 적당히 소 혀, 쇠머리, 물총새(쇠새)와 엮어 엉터리로 지어낸 말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소새바위는 ‘소새마을에 있는 바위’라서 붙은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

소새바우_원주 소초면.jpg 동그라미한 곳은 살여울 마을에 있는 '소새바위'다.

소새와 소초, 다르지만 같은 뜻의 땅이름

그렇다면 ‘소새’는 무어란 말인가. 소새는 ‘솔새’에서 ‘ㄹ’이 떨어지면서 생겨난 말이다. 땅이름에서 ‘솔’은 ‘솔다’나 ‘소나무’로 흔히 뒤쳐 생각하지만, 여기선 ‘으뜸, 산꼭대기, 신성하다’는 뜻인 ‘수리’가 소리바꿈하면서 생겨난 말로 보인다. 뒤따르는 ‘새’는 풀(草), 사이(間), 동쪽(東), 쇠(鐵)처럼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낸다. 어떻게 보아야 옳은지는 땅 모양새이나 특징은 두말할 것도 없고 옛 기록을 두루 살펴야 하겠지만, 이렇게 작은 마을 이름 유래까지 적은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지지자료≫(1911)이나 ≪조선지형도≫(1917)에도 찾아볼 수 없다.

짐작하건대 ‘솔새’가 ‘소새’로, 다시 ‘소초(所草)’로 바뀌었다고 보면, ‘새’는 억새와 같은 볏과 식물을 싸잡아 가리키는 말로 볼 수 있으나 ‘소(所)’는 소리로, ‘초(草)’는 뜻으로 받아적은 한자일 뿐이다. 한자로 썼지만 배달말을 적은, 이른바 잡탕말 셈이다. 이미 우리 조상들은 한자의 뜻과 뜻소리, 소리를 섞어 배달말을 구결, 이두, 향찰로 적어왔다. 그래서 뜻은 같지만 구체로 드러나는 땅이름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새’는 동쪽을 나타낸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다. 닷새, 엿새 같은 말에서 보듯 해가 새롭게 솟는 하루를 ‘새’로 쓰기도 하거니와 샛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요 샛별은 동쪽 하늘에 돋아난 별이다.

소초면은 치악산의 주봉이라고 할 비로봉(1288m)에서 쥐너미고개, 삼봉(1072.6m), 투구봉(1002m), 토끼봉(887m)을 지나 슥새울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동쪽을 둘러 막아선 곳이다. 소새(소초)는 동쪽에 높은 산이 보이는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높은 산이 바로 치악산이다. 이렇게 보면 [수리+새]로 쪼개볼 수 있다. ‘수리새’가 ‘술새ㆍ솔새ㆍ설새’을 거쳐 ‘소새’가 되었을 수 있다.

높은 산(수리) 서쪽에 있는 지역이라고 보면, [수리+서(西)]로 볼 수 있다. 이 말이 [솔서], [소서], [소새], [소사]로 소리바꿈했을 수 있다. 마침 치악산 서쪽 펀펀한 곳에 자리잡은 마을에 이정표로 삼을 만한 바위가 있어서 ‘소새바우’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길게 말했지만, 말밑을 모르니 치악산을 욱여넣으려고 하는데 이미 ‘소초’라는 땅이름은 치악산이 품고 있다. ‘소새’가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흐리터분해지면서 치악산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이름처럼 보이지만 그 뜻은 치악산 서쪽 산자락을 푼푼하게 끌어안은 땅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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