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53) 고사리밭, 장고사리밭, 고사리, 고샅
감나무골, 감자들, 모개나무골, 복상골, 부들밭골, 신배나무골, 옻나무골, 자작나무굼, 피나무골……. 짐작하듯 모두 풀이나 나무 이름이 들어간 땅이름들이다.
여기서 오늘은 ‘장고사리밭’이 어떻게 생겨난 땅이름인지 톺아보자. 감자밭에 감자 나고 콩밭에 콩 나고 보리밭에 보리 나듯 고사리밭은 고사리가 많아 고사리밭일까? ≪동해시 지명지≫(2017) 설명으로는 그렇다.
내금곡 마을 남쪽 음지에 있는 밭. 갈나무굼 옆의 경사가 완만한 곳을 가리킨다. 긴 고사리가 많이 나서 붙은 지명이다. 현재 채석장이다.(장고사리밭, 209쪽)
쥐치꼬댕이 아래쪽의 밭을 가리키는데, 현재 사격장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고사리가 많이 나서 붙은 이름이다.(고사리밭, 256쪽)
고사리가 많이 나면 고사리밭이고 말고다. 길쭉한 고사리가 많은 밭이니 ‘장고사리밭’이라는 설명은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닥 어색하지 않다. 고사리밭은 누구라도 ‘고사리+밭’으로 쪼개서 생각하리라. 이곳 땅이름도 고사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오래전부터 고사리를 먹어 왔다. 백석이 쓴 <가즈랑집>에 보면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같은 나물 이름이 나온다. 고사리와 고비는 봄에 어린순을 나물로 해서 먹는데, ‘곱다’에서 생겨난 이름으로 본다. 이미 ≪훈몽자회≫(1527)에 ‘고사리’로 보이는데, 배달말 어원을 다룬 ≪동언고략≫(1908)에는 ‘곡사리’로 나온다.
궐(蕨)을 ‘고사리’라 함은 곡사리(曲絲里)니, 권곡(拳曲)하고 유세(柔細)하니라.
‘궐(蕨)’을 ‘고사리’라고 함은 ‘곡사리’이기 때문인데, 말려 구부러지고 연하고 가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곡사리’가 ‘고사리’로 되었다는 말이다. 다만 ‘사리(絲里)’를 어떻게 보느냐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생각은 엇갈린다. 암만 그래도 고사리가 많이 난다면 마땅히 고사리밭이 맞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듯한 근거도 없이 비슷한 말소리로 꿰맞추어 내놓은 설명은 아닐까 하는 미심썩은 마음도 든다. 어떤 나물이고 어릴 때 꺾으면 짧고 조금 자란 뒤에 꺾으면 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긴 고사리’가 많은 밭이 따로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생각난 김에 ‘고사리’라는 땅이름을 쓰는 데를 찾아보았다. 정선군 여량면 남곡리에 ‘고사리’라는 마을이 있다. ≪조선지형도≫를 보면, 그야말로 깎아지른 듯한 골 사이에 있다. 높은 고(高) 자, 모래 사(沙) 자를 써서 고사리라고 했지만 ‘골사이’로 봐야 한다. 삼척시 도계읍에도 ‘고사리’라는 곳이 있다. 본래 이 마을에 고사리가 많이 나서 허목이 쓴 ≪척주지≫에 ‘궐리(蕨里)’라고 했고, ≪여지도서≫엔 고사리(古沙里)라 했으며, ≪삼척군지≫(1916)에 와서 ‘고사리(古士里)’가 되었다. 전하는 말로는 “마을 앞 안산이 험하여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고살(故殺)에서 유래”(디지털삼척문화대전 ‘고사리’)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마을 앉음새를 보면, 오십천으로 흘러드는 산기천 냇줄기 주변으로 마을을 이뤘는데 골 사이에 있는 마을로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인제군 인제읍에도 고사리가 있다.
고사리 마을의 앉음새로 보면 모두 골짜구니 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배달말에 고샅, 고샅길, 골골샅샅 같은 말이 있다. ‘고샅’은 시골 마을의 좁다란 골목길이나 좁은 골짜기 사이, 사타구니를 에둘러 가리키는 말이다. ‘샅’은 두 다리 사이나 두 물건 사이에 있는 틈을 가리킨다. ‘골샅’은 골 사이라는 말이다. ‘골샅’에서 ‘ㄹ’이 떨어지면서 ‘고샅’이 되었다.
아마도 골 샅에 있는 마을이라서 ‘고샅’이라고 했는데, ‘동(洞)’이나 ‘리(里)’를 붙여 ‘고샅리, 고샅동’처럼 쓰면서 ‘고사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자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유래를 지어냈다고 봐야 옳다. 고사리밭, 장고사리밭도 같은 이치로 생겨난 땅이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에 지체 높고 유식한 양반들이나 구실아치들이 자기네들이 즐겨 쓰는 한자를 이리 붙이고 저리 덧대어 뜻을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고샅고샅 1.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마다. 2. 좁은 골짜기의 사이마다.
골골샅샅 한 군데도 빠짐이 없는 모든 곳.=방방곡곡.
샅샅이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빈틈없이 모조리
샅바 씨름할 때 허리와 다리 샅에 둘러 묶어서 손잡이로 쓰는 천.
사타구니 ‘샅’을 낮잡아 이르는 말. 샅+아구니. 준말: 사타귀,
고사리 고사리의 말밑을 두고 학자들 사이 의견이 갈린다. 첫 번째는 ‘구+살이’를 말밑으로 보는 설이다. 고사리는 꺾인 자리에서 순이 나고 또 나서 아홉 번을 꺾여도 살아날 만큼 목숨이 질기다고 ‘구살이’라고 했고 이 말이 ‘고사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곱+사리’로 보는 설로, 곱은 ‘곱다/굽다’고 할 때 그 ‘곱-’이다. 사리는 ‘사이’를 받아 쓴 말로 본디 푸새, 남새에서 보듯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풀을 뜻하는 ‘새’로 보았다. 순이 고부라져 나는 풀이다. 세 번째도 ‘곱+사리’로 보되, ‘사리’를 실이나 새끼, 국수 따위를 동그랗게 만 뭉치로 보아 새순이 사리 짓듯 나오는 풀로 보았다.
고사리손 어린아이의 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