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60) 진퍼리, 즘퍼리, 진펄, 질뚝이
토끼도 살이 올은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딸으며
나는 벌서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백석이 쓴 <가즈랑집>이라는 시의 일부다. 본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지만, 여기선 읽기 쉽도록 띄어쓰기 해서 옮겨 적었다. 백석은 평안남도 정주군에서 태어나 조선 최고의 모던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가 쓴 시에는 평안도 말과 우리 고유 정서가 어느 시인보다도 잘 살아 있다.
이 시에도 낯선 평안도 말들이 여럿 있는데, ‘아르대즘퍼리’라는 말은 더욱 눈에 설다. 아래쪽에 있는 질퍽한 진흙 펄이란 뜻이다. 요즘 말로는 ‘진펄’이다.
동해시 괴란동에 ‘진퍼리골’이란 데가 있다. 이때 ‘진퍼리’는 <가즈랑집>의 ‘즘퍼리’와 같은 말이다. ≪동해시 지명지≫(2017)는 “괴비골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왼쪽으로 첫 번째 나타나는 골짜기인데, 골짜기 바닥이 늘 물기로 젖어 질척댄다”(40쪽)고 적었다. ‘골짜기 바닥이 늘 물기로 젖어 질척’대는 곳이니 ‘진퍼리골’이라고 하고 말고다. 진펄의 옛말은 ‘즌퍼리’다. ≪훈몽자회≫(1527)을 보면 “沮 즌퍼리 져, 洳 즌퍼리 ᅀ겨, 漥 즌퍼리 와, 淀 즌퍼리 뎐, 濼 즌퍼리 박, 蕩 즌퍼리 탕” 같이 ‘즌퍼리’라고 새긴 한자가 여럿 나온다.
한편, 양지마을에서 용정길을 거쳐 동산터로 가는 길목을 ‘질뚝이’라고 했다. 길바닥이 진흙이라서 비만 오면 신발에 진흙이 달라붙어 질뚝질뚝 아톰발이 되어 다녔다고 해서 붙은 땅이름이라니 얼마나 재미난가.
이렇게 눈을 돌리고 보면 마을과 길과 내와 골과 산처럼 작은 땅이름에 화석처럼 배달말이 숨어 있다.
가지취 참취. '참'은 진짜, 으뜸이란 뜻이고, '취'는 먹을 수 있는 나물을 뜻한다. <여승>이란 시에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는 대목이 있다.
물구지우림 무릇(물구지)의 뿌리를 물에 우려내서 엿처럼 고아낸 음식. '물곶>물옺>(물웃)>무릇'으로 소리바꿈이 일어난 것으로 보며, 이때 '물'은 무리라는 뜻이요, '곶'은 꽃이므로 무리지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지어낸 이름으로 본다.
동굴네우림 둥글레 뿌리를 물에 우려내서 찌거나 고아낸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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