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배워야 할 때입니다, 형님”

이름 없는 조직의 어느 후배

by 윤수호

"그땐 말이야"로는 안 풀리는 지금


“그건 내가 예전에 해봤던 거야.”
“그렇게 해봤자 안 돼.”
“너는 아직 몰라서 그래.”


공무원 조직 안에서 이 말들을 듣는 건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오랜 경험을 지닌 선배들의 조언이니, 처음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닙니다.

그 말 이후에 새로운 대안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젊은 직원이 제안한 아이디어는 "그건 위험할 수 있어", "선례가 없어", "위에서 싫어해"란 말로 덮이고, 다시 예전 방식대로 처리됩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바뀌지 않습니다.


경험은 자산이지만, 고집은 족쇄입니다


공직 조직은 구조적으로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안정은 익숙한 것, 과거에 했던 것, 검증된 것에서 옵니다. 그렇다 보니, 변화는 '불안정함'으로 여겨지고, 신입의 제안은 '검증되지 않음'으로 밀려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민의 요구는 실시간으로 바뀌고, 기술은 매달 진화하며, 법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바쁩니다.

그런데 조직은 아직도 과거의 속도로 걷고 있습니다.


2025년 8월 7일 자 한 일간지에 따르면, 퇴직자들이 바라는 근무 종료 나이는 평균 74세였습니다.

놀라운 수치입니다. ‘아직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고, ‘그만두면 쓸모 없어진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안 배워도 된다”는 정체(停滯)의 정서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


꼰대 문화의 본질은 '닫힌 귀'


우리는 ‘꼰대’를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 말합니다. 새로움을 거부하고, 질문을 무시하며, 설명을 듣지 않으려는 태도. 그건 60대 관리자뿐 아니라 30대 주임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은 기본적으로 서열과 계급, 호봉과 연공이라는 경직된 구조를 가집니다. 이는 리더에게 "듣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후배에게는 "말해도 반영되지 않는" 좌절을 남깁니다.


물론 세대 간 차이는 존재합니다. MZ세대가 모든 걸 잘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도 시행착오를 겪고, 실수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문제를 지금 방식으로 풀려고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무시되기보다 함께 검토되어야 합니다.


작은 시도, 진짜 변화를 만든다


최근 서울시의 한 부서에서는 ‘세대 짝꿍’ 제도를 시범 운영했습니다. MZ세대 직원과 중견 간부가 업무를 짝을 이뤄 함께 수행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공유하는 실험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배우고, 위에서 아래를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런 시도야말로 공직문화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입니다.


조직의 위계와 관성은 때때로 일을 '생존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기도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예전에 해봤어"라는 말로 묵살되고, 도전보다 실수가 두려운 분위기에서 우리는 점점 '해야 하니까 하는 일'에 익숙해집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개인의 열정도, 성장도 메말라갑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일하는 걸까요?

단지 월급을 위해서? 눈치 보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 무엇인가 이루고 싶어서?


일의 본질은 생계를 넘어,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조직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구성원은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개인 철학이 아니라 조직이 바뀌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우리 사회에는 일하지 않으면 존재가 증명되지 않는 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쉬는 건 사치, 늦게 퇴근하는 것이 미덕,
‘퇴직’은 은퇴가 아니라 '소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조직도 사람도 변화하고 배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는 공포,

늘 일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착각.


이 모든 것이 결국 '끊임없이 일해야만 하는 삶'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단지 경제 구조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일 = 존재의 증명이 되어버린 사회.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쯤 있을까요?

‘즐거움’은 왜 자꾸 뒤로 밀려날까요?


“이제는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형님, 경험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덕에 안전하게 일하고, 실수를 줄이며, 업무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험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왔습니다.

듣는다는 건, 권위를 내려놓는 게 아닙니다.
함께 성장하겠다는 선택입니다.

이제는 답을 내리는 리더가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리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함께 배워가면 어떨까요.


“조직이 바뀌기 전에, 마음부터 열어야 합니다.”
근데 나만 바뀌어서 역적이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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