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함과 동시에 열심히 놀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게 맞는 거라 생각했다. 하기 싫은 공부를 고등학교 때까지 했으면 대학에 와서는 좀 놀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간신히 F를 받게 되지 않을 정도로만 출석을 하면서 놀러 다녔다. 노래방, 포켓볼, 낮술 등 나에겐 이게 대학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그 로망 속에서도 시험기간은 다가왔다. 내 로망의 한계점은 '뭐가 되었든 F만은 받지 말자.'였기 때문에 일단 시험은 봐야 했다. 벼락치기의 시즌이 온 것이다.
영어학부로 지원해
난 2학기 수시 제도로 대학을 합격한 케이스다. 1차로 수시에서 수능 조건부 합격을 하면 2차로 수능 등급이 조건부에 부합하면 합격이고 아니면 불합격인 것이다. 내신은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지만 수능 모의고사는 그야말로 젬병인 학생, 그 학생이 바로 나였다. 무조건 외워서 어떻게든 내신은 비교적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응용력이 필요한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늘 성적이 바닥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도, 담임선생님도 어떻게든 수시로 대학을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스스로도 자신을 너무 잘 알았기에 나 역시, 수능으로는 어머니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1학기 수시에는 똑 떨어지고 말았다. 마음이 조급해져왔다. 이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는지, 2학기 때에는 당신 마음에 차지 않는 대학들까지도 원서를 넣자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다닌 K대학에도 원서를 넣게 된 것이다. 전공 역시 어머니의 선택이었다. 솔직히 그 당시엔 내가 뭘 잘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전공을 선택하던 크게 상관이 없었다. 내 주관이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선택대로 지웠했으리라.
어쩌면 그랬기에 더 공부에 정을 못 붙이고 놀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입학을 했는데 외국에서 살다가 온 학생들을 뽑는 특기자 전형으로 들어온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난 원서 한 페이지 읽는 데 1시간씩 걸리는데 그 친구들은 1분도 안 걸렸다. 그래도 그들을 이겨보겠다는 의지도 나에겐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F만 피하면 되었으니까. 실제로 어떻게든 벼락치기로 F만은 피한 1학년이 되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1학년 끝자락 무렵 즈음 되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대로 영어를 전공해도 되는 걸까? 나는 영어를 좋아하나? 아니라면 난 뭘 좋아하지? 뭘 할 때 즐겁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영어는 그 답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예중을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가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과에서 예체능으로 전과는 허용되어 있지 않았다. 찾아보니 생활과학부 주거환경전공이 있었다. 좀 알아보니 전공 이름만 '주거환경전공'이고 배우는 것들은 '인테리어'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그리고 전과 신청 기간에 난 내 멋대로 원서를 내고 왔다. 부모님과의 상의 없이. 어차피 안 된다고 하실 거 같았기에 그냥 일부터 저질러버렸다.
전공을 선택할 때 왜 그렇게 나의 의견이 없었을까? 처음부터 주거환경전공을 선택했다면 좀 더 열심히 학부 생활에 참여했을까? 중간에 전과한 난 친구를 사귀기도 애매했고, 학점을 다 채우기 위해 4학년까지 빡빡하게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영어학부 때와는 달리 정말 재미있는 3년이었다. (중간에 휴학해서 실질적으로는 4년이지만) 나중에 알게 되신 엄마는 노발대발하셨지만 어쩌리오. 이미 일은 벌어진걸. 그렇게 K장녀의 반항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