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명수 가 참 좋다
나까무라, 야마모토 가 그립다
나는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를 무척 좋아한다. 내 주변에서는 경쟁 프로그램인 1박 2일을 주 시청하는 것 같았지만 난 무한도전 광팬을 자처하며 토요일엔 본방사수를 놓치지 않으려 외출도 하지 않은 채 TV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초창기 멤버인 최고의 개그맨 유재석과 정준하, 하하, 정형돈, 박명수, 노홍철, 여섯 남자가 만들어내는 즐거움과 유쾌함에 정말 실컷 배꼽을 잡고 웃었다. 무한도전이 시작되던 해에는 나에게도 건강의 적신호와 함께 시련들이 연달아 일어나서 TV 보면서 웃고 자시고 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정반대로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시간만큼은 시련과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항시 어둡고 과묵하며 불안정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나와 대화하기를 꺼릴 정도로 까칠했었다. 그러한 내가 동료들과 함께 무한도전을 시청하면서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하며 깔깔거리자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꼭 독일 나치 군인처럼 찬바람만 쌩쌩 부는 줄 알았더니 웃을 줄도 아네'. 동료들은 별로 웃기지도 않은 내용인데, 내가 까르르 웃는 게 재밌어서 나를 보고 신기해서 더 웃었다고 했다. 방귀를 트듯 한번 웃음을 튼 이후에는 서먹한 동료들과의 사이도 좋아져서 먼저 내게 다가와서 일손을 거들어 주거나 사탕을 건네주는 등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같이 먹거리를 준비해 놓고 개그맨 흉내를 따라 하면서 무한도전을 시청했다.
어느 날 저 여섯 멤버 중에서 누가 제일 재밌고 멋있는가? 를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유재석을 최고로 꼽았다. 유일하게 나 혼자만 '박명수'!라고 대답했다. '아니 왜? 이유가 뭐야?' 의아해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불쌍해 보여서.. 나라도 좋아해 줘야 할 것 같아서..'라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다들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박명수를 좋아한다 하니 너는 참 별종이구나 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뭔가 잘하고 싶은 의욕은 넘쳐나는데 젊은 친구들 기세에 치이고, 연기며 대사 암기, 어정쩡한 위치, 체력까지 밀리는 데다 밑도 끝도 없이 '야! 야! 야!' 호통 개그로 야단을 쳐서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려는 박명수가 내 눈엔 꼭 내 모습 같아 보여서 더더욱 응원했던 것 같다. 박명수를 응원했던 것은 꼴찌에게 보내는 박수처럼 결국 나를 위한 위로의 응원이었다.
그리고 무한도전 이전에 <유머 1번지> 에서 최고 인기를 얻었던 코너 <괜찮아유~>가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의 웃음 코드이다. 시골 태생이라서 그런지 농촌 설정 개그가 낮설지 않았다. 특히 <전설의 덕암리 나까무라>를 리메이크한 버전을 무한도전에서 다시 선보인적이 있었는데
애드리브로 연기하는 <김장준비 야마모토>, <농촌 뉴스 나카무라>, 개그는 무한도전 폐지 이후에도 매번 재 시청할 때마다 요절복통할 정도로 전설이 되었다.
그 힘든 시절을 무한도전을 보면서 건강도 되찾고 어려웠던 동료들과도 화합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글쓰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문자를 보낼 때에 ' 안녕하세유~ 잘지내셨어유'~ 말끝마다 '유~'를 붙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사회 초년생 무렵, 평상시처럼 '과장님께서 얼릉 오시래유~'라고 문자를 보냈다가 트집 잡혀서 대리님한테 박살이 난적도 있었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지금까지 '~유' 를 애용한다. 무한도전 폐지이후 여섯 멤버들 각자 승승장구하며 잘 살고 있는 모습들을보니 광팬으로서 흐뭇하다.
지금도 박명수의 유튜브 <할명수>를 구독하면서 웃음 나들이 떠나곤한다.
가끔 제 글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내 웃음의 원천은 방황하던 청소년기의 유머 1번지 <나까무라>이며 시련을 겪고 있던 날의 박명수의 <야마모토> 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능 프로를 보면서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고, 그 웃음 덕분에 힘든 시절들을 무사히 잘 견뎌왔다. 난 지금도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보다 우스갯소리로 즐겁게 말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해바라기처럼 밝은 사람, 그냥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는 사람, 매사 즐겁게 사는 사람, 그런 즐겁고 재미난 글을 간절히 쓰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