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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Feb 21. 2024

논개 정신으로 사는 여자(2)

32:1

"선생님, 카톡이 안돼요. 자료를 어디로 보내야 하죠?"

"문자로 보내주세요."


나는 지금까지 카톡을 안 하고 살았다. 사는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수시로 들리는 "카톡 카톡" 소리가 내 귀엔 ' 깨똑 깨똑'으들렸다.

카톡이 언제부터 개설되었으며 상용화되었는지 구태여 알고 싶지는 않다. 늘 그랬다. 항시 새로운 문물에 대한 환상과 부러움 보다 그냥 내  그대로 쓰는 게 편했다. 아마 새 기계의 구조를 배우는 게 두려웠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투철한 논개 정신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는데 쓰잘데 없이 왜 바꿔'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어서 아무리 이효리, 전지현이 나와서

 '새로 나온 핸드폰으로 바꿔보세염, 그러면 저처럼 이뻐질꺼에염!'

요염하게 윙크를 날려도 나는 만사가 싫다. 그냥 구닥다리 내 것이 최고다!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어갈 무렵, 아마 애니콜을 가장 오래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고장 나서 버린 게 아니라 사진 화소가 너무나 구려서 어쩔 수 없이 바꿨 다. 갤럭시 2에서 지금은 반값 할인 으로 구매한 갤럭시 6인가8년째 사용 중이다.


 십 년 만에 브런치 작가로 글 쓰기를 하다 보니 다음 메일이 사라져서 카카오 계정을 새로 개설했다. 하지만 카톡은 실행하지 않았다. 이처럼 철저하게 문자로만 소통하다보니 '카톡도 안 하는 여자'로 낙인이 찍혔다. 어처구니없게 불만은 다른 곳에서 터져버렸다.


십여 년 전부터 개설된 불교 공부  모임에 총무를 맡아 보면서 다른 회원들과의 소통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회원 32명 중에 '카톡을 안 하는 여자'는 유일하게 나 혼자 뿐이었다. 그 대신 밴드를 이용하여 공지 사항을 전달하곤 했는데, 32명이 단체 카톡을 개설하여 그리로 이사를 나가 버렸다. 밴드엔 '카톡 안 하는 여자' 나 혼자만 남았다. 그러면서 고것들끼리 수시로 '깨똑 깨똑'을 날리며  깨떡(깨똑)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희희낙락 나눠먹고 있었다. 나 만 빼고.


'즈그들이 아쉬우면 연락해 주겠지'

 하면서 밴드에 예쁜 풍경 사진도 올리며 집 나간 깨똑들을 유혹했지만 스마일 하나 달랑 던져주고는 또 고것들끼리 깨떡을 나눠 먹으러 갈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꿋꿋했다. '내 목에 칼이 들어도 나의 신념은 바꾸지 않을 테다!' 마치 논개처럼, 만주 벌판을 달리는 무명의 독립 투사처럼, 외로운 섬,  독도를 지키듯 밴드를 지키고 있었다.  


"진행은 잘 되시나요, 몇 명이나 간답디까?"

"아니, 해조음님은 원시인이세요? 카톡을 안 하시니까, 소통이 제대로 안되잖아요. 매번 이렇게 따로 알려  드려야 해서 너무나 불편해요."


대학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는 이교수가 내게 일침을 날렸다. 참다 참다 14년 만에 터진 것이다.

딱 한 달 전 경주 마애불 탐방을 앞두고 1박 2일 일정을 추진하면서 운전이며, 경비, 숙박, 탐방일정 등에 대해 깨떡 나눠먹는 것들끼리 '깨떡깨떡' 하다가 '개떡' 되고말았다.

 '너 가면 나 안 가고, 느 안 가면, 내 안 간다. 그럼 가지말자! 환불해! 모임도 폭파시켜!'

하면서 둘이 싸우다가 셋이 싸우고, 셋이 싸우다 다섯이 싸우고..

어제는 이 사람이랑 '깨떡깨떡' 더니 내일은 그 사람이 하에 죽일 년, '개떡개떡'이 되고.. ..서로 깨떡과개떡을 내던지며 싸우는게 가관도 아니었다. 지역 사회 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끼리의 말 싸움이 볼만했다. 이런때는 깨떡이든 개떡이든  안하는 내가 가장 속 편한 사람이었다.


 출발도 하기 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고 총대를 메었던 이교수는 푸바오 마냥 다크서클이 가슴 밑에까지 처져있었다. 결국에는 다녀와서 수액 맞고 입원까지 했다.


시끌사끌 대립하면서 냄비속에 가득 담긴 생미꾸라지들처럼   팔딱팔딱 튀어나가려는 것을  이교수가 왕소금  팍팍 뿌려서  담가  버리려고 솥뚜껑을  몸으로 누르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눈치도 없이 이교수에게 안부 문자를 날렸으니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것이다.  즈그들끼리 깨떡을 잘 나눠 먹다가 애먼 논개, 나에게까지 불통이 튀어 버렸다.


이교수와는 막역한 사이인지라  이런 말을 들어도 솔직히 서운하지는 않았다.

'자기는 첨으로 총대를 메었는데, 총무 소임으로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수행했느냐' 며 나를 다시 평가했다고 말한 분이시다.


이 나이에 누군가에게 욕 먹기도 싫고, 단체 사진을  보낼적에는 내것만 따로 문자로 전송해줘야해서 민폐를 끼친것은 사실이다. 나 혼자 때문에 32명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웬수같은 깨톡의 빗장을 열어버렸다. 아무리 철갑을 두른 신념이라도 시류에 따라 변하는 법이다. 작은 벌침에 심장이 관통하는 이다.


그래, 그 입, 다물라! 나, 카톡 열었다! 어쩔래? 이제 나한테 시비걸 , 없지!

 깨똑을 열자마자 난리가 났다.

'아니~세상에, 설산의 표범님께서 이리 누추한 저잣거리까지 내려오시고~~'

환영인지, 비아냥이지, 인사를 받긴  받았지만 나는 지금 깨똑 묵언 수행 중이다. 32명이 모인 단체에 한해서만 똑을 열었을 뿐, 지금도 논개 정신으로 무장하여  외로운 밴드지기로 활동 중이다. 개떡들도  탐방 떠나기 전까지 그렇게 싸우더니 다녀오고 나서는 서로 서로 화해하며 더더욱  깨떡을 호호 하하 나르기에 열심들이다.


단체 깨방에서는'아휴~깨 진짜 맛있어유. 우리 함께 깨떡 먹으면서 놀아 보아유~' 하면서 알랑 방귀를 뀌어도 나는 '그딴 거 안 먹는다. 니들끼리 많이 나눠 먹거라!' 하면서 '똑 절대 사절' 응수하고 있다.


한번 논개 정신은 영원한 논개 정신이다.  비록 시절 인연을 잘못 만나 전략상 신념이 잠깐 후퇴했지만 난 다시 똑들을 상대로 반격의 칼을 숫돌에 슥슥 갈고 있는 중이다. 


그나저나 고민이 생겼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 공유할 카톡, SNS, 비둘기  같은 게 뜨는데 난 오로지 논개 브런치 밖에는 없다. 부채도사처럼 깨똑에도 '날릴까 말까?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에잇! 하고 누르지 않는다. 논개 정신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글이 확장되지 못하는 것 같다. 백 명 정도 구독자가 생기면 개선장군처럼 깨똑들에게 알릴까 말까, 심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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