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안쪽 에어컨 실외기실.
가로세로 1m 남짓 되는, 저곳에서 마법이 일어나고 있다.
끝도 없이 물건이 나온다, 과거가 나온다
신혼 초 등록만 하고 쓰면 된다며 신랑친구에게 받아온 정수기
큰 돗자리 3개 1인용 돗자리 3개(지난번에 2개를 버렸었으니 원래는 총 5개)
실내용 난방텐트
도자기 화분, 플라스틱화분, 10년 전 유행했던 시멘트느낌 화분 3개 장독화분 1개
칫솔소독기
아쿠아슈즈 3켤레
첫째 이유식 구매하고 받은 아이스팩 여러 개와 보냉백 (지금 첫째는 아홉 살이다)
첫째 아기목욕시켰던 플라스틱 대야 2개와 샴푸대 (앞서 말했다시피 지금 첫째는 아.. 아홉 살...)
단열하겠다며 붙였던 뽁뽁이비닐 남은 것
바오바브나무씨앗
결혼 전 남편이 취미로 했던 사회인야구용품과 가방
벽지페인트용품
그나마 선반 쪽은 정리를 한 상태이며 위쪽으로 두칸의 선반이 더 있다.
타임슬립을 한 것 마냥 그곳은 10년 전 나였다.
그 작은 공간에서 10년 전 나의 생활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물건들 중에 현재 내가 쓰는 것은 아이들 방학 때마다 제주에 가기 위해 짐을 넣는 캐리어 3개와 1년에 두 달은 꺼내고 열 달은 두는 플라스틱 트리와 트리장식뿐이었다
정리하고자 호기롭게 열었던 문을 몇 번이나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다 먼지 쌓인 10년을 마침내 꺼내놓았다
빼곡하던 실외기실에 바닥이 보이고 내가 들어갈 공간이 생기고 선반의 빈자리가 나타나니 속이 뚫리는 느낌.
75리터 종량제 봉투 하나와 50리터 마대자루가 가득 채워져 버려지고 대형화분 2개와 다수의 큰 플라스틱용품들을 분리배출했다.
추억 가득하지만 쓸모없어진 과거가 버려지고 현재의 시간으로 채워진 작은 실외기실은 이제 조금 자주 들여다보는 곳이 되었다.
정리하고(=버리고) 나니 비로소 마주한 시간들.
꽤나 내가 자랑스러워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