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천 이야기 10-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아버지는 당신의 말씀에 의하면, 학교에서 인기가 많다고 했다.
여고생들 소풍에도 따라가고 여학생들과 웃으면서 나란히 사진도 찍었다면서 사진들을 자랑하셨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보여줄 최소한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아버진 당신의 학교소사 직업을 부끄러워하셨고, 나도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당시 우리 집은 엄마가 떡방앗간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떡이 많았다. 그 떡을 학교에 가져가 나눠주곤 한 것이 인기의 이유일 거라 속삭이며 자식들은 킥킥거렸다.
그러나 아버진 밖에서는 친절하고 호탕하며, 잘 웃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공무원이었다. 고치지 못하는 물건이 없었고, 학교의 정원 관리뿐만 아니라 우리 집 골목길가에도 꽃을 심어서 집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이런 모습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괴산 고향에 사셨는데 제천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나도 함께 살기도 하였고, 학창 시절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댁에 갔다.
그때마다 할아버지의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잠이 든 모습이 유일하다.
농번기인 겨울에도 산에서 나무를 하시면서 농기구 재료를 찾아 다듬으셨다.
할아버지는 농사짓는 틈틈이 큰 수레와, 지게 등을 만드셨고, 싸리나뭇가지로는 빗자루도 만들고 다양한 바구니를 만들어 시골 사람들에게 파셨다. 그 외에도 누에 치는 도구들, 돗자리, 멍석, 삼태기 등 농촌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농기구를 만드는 목수이며, 요샛말로 전통 공예가이기도 하셨다.
새벽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쇠죽을 쑤셨고, 덕분에 우린 새벽에도 따뜻한 온돌을 즐겼다.
아래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 사진이다. 할아버지가 만드신 바구니는 이것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항아리처럼 위아래가 둥근 원인데 지름 30cm, 입구는 지름이 15~20cm 정도이며 가운데는 볼록한 모양으로 끈을 길게 달아 한쪽 어깨에 걸고 다녔던 것 같다.
쉬지 않고 무언가 만들고 일하시는 할아버지를 아버지가 닮았고, 어쩌면 나의 일중독도 거기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중학교 때 비누로 스누피 강아지를 만들어 최고점을 받았고 동생들은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한다. 당시에도 난 할아버지처럼 조각을 한다고 생각했고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