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에 대한 비판이었을까? 열등의식의 합리화였을까?
90년대 후반
노량진에서 재수생이라는 신분을 달고 지낼 때이다.
오랜만에 펼쳐든 자작시 노트에서 발견한 시 몇 편을 훑어보니
꽤나 재수라는 경험이 억울했다 보다.
대학시절 한 교양수업 교수님이 했던 말 중 가슴에 새겨진 명언이 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열등감으로 꽉 찬 사람은 겉으로는 우쭐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이며,
반면, 우월의식으로 내면이 채워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열등감을 표출한다."
인생의 여러 기회에서 실패를 맛볼수록 그 말은 가슴속에서 되살아났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자비의 꽃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라는 가슴 속 씨앗에서만 피어난다.
재수생 시절..이러한 열등감과 우월감이 엉켜있었던 시기였을테다.
어쩌면 지금도 극복하지 못했을 그런 슬픈 자만심.
다시 들춰낸 부끄러움을 올려 본다.
<부정출발>
준비!
총성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몇몇 선수가 뛰어 나간다.
뒤따라 또 몇 명이 뛰어 나간다.
이제 출발선에 서있는 건
나 혼 자
땅!
비로소 출발 신호가 울린다.
나는 출발했다.
'너무 늦게 출발한 것이 아닌가'
앞서나간 선수를 저지하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심판은 오히려 그들에게 음료를 제공한다.
관중도 그들 편인 것 같다.
꼴찌로 달리는 나를 비웃는 소리.
'너무 늦게 출발한 것이 아닌가'
'왜 그들처럼 뛰쳐나가지 못하는가'
'아니. 비굴하게 달리진 않겠다고'
'진정한 승자는 나뿐이라고'
힘들다.
음료도 박수도 외면한 채
팬티 한 장, 운동화 한 켤레로
나 혼 자
달리기엔
나를 이해하는 건 하늘과 땅뿐
하지만 그것들은 말이 없다.
사실이지만 인정하기 싫은 일들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른 선수의 편인 것을
그들의 세상에선
나 만 이
부정출발인 것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