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밥티스트(MADAME BAPTISTE)

모파상 중단편전집 02 - 피피 아가씨 02

by 이닮

루뱅(Loubain.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지명이다-역자 주)역 여객 라운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시계부터 찾았다. 파리발 급행열차를 타려면 두 시간 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갑자기 40킬로미터를 걸어오기라도 한 것 같은 피로감을 느끼고, 벽에서 시간을 때울 소일거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역에서 나와 역 출입구 앞에 멈춰 서서 뭔가 할 일을 만들어 보려고 마음이 분주했다.

역 앞 거리에는 빈약하지만 아카시 나무가 불바르(boulevard. 가로수 거리-역자 주) 풍으로 심겨 있고 길 양쪽의 올망졸망 각양각색의 집들, 작은 마을의 집들 사이로 언덕길이 길게 뻗어있다. 그 끝에는 공원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무가 보인다.

이따금 고양이가 도로를 가로질러 섬세하게 길가의 도랑을 밟는다. 강아지 한 마리가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 분주하게 모든 나무 밑동의 냄새를 맡는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맥이 빠지고 좌절감이 밀려왔다.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한 장례 행렬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어쩔 수 없이 역 안의 작은 카페에서 마시지도 않을 맥주와 읽지도 않을 지방신문 앞에 앉아있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운구차를 보는 것이라도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10분은 벌었다.

그러나 갑자기 내 관심이 배가되었다. 남자 여덟 명만이 고인의 뒤를 따랐고 그중 한 명은 울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을 인솔하는 어떤 사제도 없었다. 나는 ‘이건 종교의식 없는 장례식이다’고 생각했다. 나는 루뱅 같은 마을에도 이런 일을 벌일 자유사상가가 적어도 백 명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될까? 행렬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고인이 아무런 장례 절차 없이, 결국에는 종교의식 없이 매장된다는 것을 말했다.

무료함에서 비롯된 호기심은 가장 복잡한 억측으로 나를 몰고 갔다. 그러다 운구차가 내 앞을 지날 때 행렬을 따라가 보자는 괴상한 생각을 했다. 적어도 한 시간의 소일거리로, 나는 슬픈 표정을 하고 그들 뒤에서 걷기 시작했다.

맨 뒤의 두 사람이 놀라 돌아보더니 속닥거렸다. 내가 이 마을 사람이 맞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이어서 그들은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 앞의 두 사람에게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이런 조사와 관심이 거북해 그것을 끝내려고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인사를 하고 나는 말했다.

“말씀을 나누시는 도중에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종교의식 없는 장례식을 보고 이렇게 따라나섰습니다. 여러분의 전송을 받는 고인과는 일면식도 없습니다만.”

그러자 남자 중 한 명이 말했다.

“고인은 유부녀입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런데, 종교의식 없는 장례식이 맞죠,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히 나에게 사정을 말하고 싶었을 다른 한 남자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성직자들이 우리의 교회 입장을 거부했습니다.”

나는 이번에는 “아!” 하고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의적인 옆의 그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터놓고 이야기했다.

“아! 말하자면 꽤 긴 이야기입니다. 이 젊은 여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의식에 따라 그녀를 매장할 수 없었습니다. 저기 행렬 맨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남편입니다.”

그래서 나는 머뭇거리며 말해보았다.

“정말 놀랍고 관심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그 이야기를 제게 들려달라고 한다면 실례가 될까요? 제가 귀찮게 해드렸다면 흘려 들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는 허물없이 내 팔을 잡았다.

“아니, 전혀, 전혀. 여기 있다가 조금 뒤에 따라갑시다.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만만치 않은 언덕길을 올라가야 하니, 저기 나무가 보이는 묘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꽤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마담 폴 아모(Paul Hamot)라는 그 젊은 여성은 무슈 퐁타넬(Fontanelle)이라는 부유한 상인의 딸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열한 살에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인이 그녀를 더럽힌 겁니다. 폭력으로 고발당한 그 파렴치한에 의해 그녀는 불구가 되어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끔찍한 송사가 벌어졌고, 가련한 박해자는 석 달 동안이나 그 짐승이 저지른 수치스러운 행위의 제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놈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어린 소녀는 비열한 낙인이 찍혀 외톨이로 친구도 없이, 누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춰 입술을 더럽힐 생각을 하겠냐는 어른들의 징벌 같은 입맞춤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일종의 괴물, 기피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나직이 쑤군거렸습니다. “너희들 알아, 작은 퐁타넬(petite Fontanelle)?” 거리에서 그녀가 지나가면 모두가 돌아봤습니다. 심지어 산책을 시켜줄 보모조차 쉽게 구할 수 없었고, 다른 집 보모들은 마치 그 아이에게서 전염병이 시작되어 다가가는 모든 사람에게 옮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떨어져 서 있었습니다.

매일 오후 아이들이 놀러 가는 곳에서 이 불쌍한 어린 소녀를 볼 때면 정말이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홀로 남겨져, 그녀의 보모 곁에 서서 다른 아이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간혹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저항할 수 없는 욕구에 못 이겨 그녀는 머뭇거리며 걸어와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듯 불안해하는 몸짓으로 몰래 무리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금세 모든 벤치에서 어머니들 보모들 이모들이 급히 달려와 다짜고짜 각자 자신이 맡은 어린 소녀들의 손을 잡고 냉혹하게 끌고 가버렸습니다. 작은 퐁타넬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혼자 남아 미친 듯 날뛰며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보모의 앞치마에 오열하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그녀가 자라면서 더 나빠졌습니다. 청소년기의 소녀들은 페스트 환자처럼 그녀를 멀리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젊은 사람은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오렌지꽃으로 상징될 자격이 없습니다. 엄마들이 결혼식 날 저녁에만 떨리는 목소리로 어렵사리 짐작만 남기는 엄청난 비밀을 그녀는 거의 읽는 법을 알기도 전에 꿰뚫고 있었습니다.

여자 가정교사와 함께 거리를 걸을 때면 언제나, 그녀는 마치 새롭고 끔찍한 모험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처럼, 거리를 걸을 때면 언제나,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는 알 수 없는 수치심으로 눈을 내리깔았지만, 생각보다 순진하지 않은 다른 소녀들은 요사스레 그녀를 바라보고 쑥덕거리며 뒤에서 비웃었고, 우연히 그녀가 쳐다보기라도 하면 산만하게 재빨리 고개를 돌렸습니다.

몇몇 남자만이 가까스로 그녀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그녀를 못 본 척했습니다. 오사리잡놈 몇 명이 그녀를 능욕하고 망친 하인의 이름에서 따와, ‘마담 밥티스트’라고 그녀를 불렀습니다.

그녀는 말이 거의 없고 웃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영혼이 겪는 내밀한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잘못을 마치 영원히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그들 자신 그녀 앞에서 그녀를 거북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아무리 자기 아들이라고 해도 석방된 죄수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무슈와 마담 퐁타넬은 딸을 마치 감옥에서 나온 아들 대하듯 했습니다.

그녀는 예쁘고 하얗고 키가 크고 날씬하고 고상했습니다. 그 일만 없었다면 제 마음에 꼭 들었을 겁니다, 선생님.

그런데 18개월 전, 새로운 군수가 지금 이곳으로 부임해 왔을 때 그는 카르티에 라탱(quartier Latin.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 앞의 대학가. 옛날에 라틴어로 교육을 했기 때문에 생긴 말-역자 주)에서 삶을 주도했다는 재미있는 청년을 개인비서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퐁타넬 양을 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뭐야, 그건 곧 앞날을 위한 보증이야. 그런 일은 결혼 후보다 전에 일어나는 게 더 좋아. 그 여자와 함께라면 편히 잠들 수 있을 거야.”

그는 구애하고 청혼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렇게 배짱이 두둑했기 때문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신혼 인사를 하러 다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응해주었고 어떤 사람들은 꺼렸습니다. 기어이 소문은 잊히기 시작했고 그녀는 세상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신처럼 숭배했다고 말해야 할 겁니다. 그가 불가항력의 세평과 모욕에 용감하게 맞서, 요컨대 극소수의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을 실행에 옮겨 그녀의 명예를 찾아주었고 평범한 삶으로 돌려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강렬하면서도 그늘진 애착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임신했습니다. 그녀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마치 그녀가 모성에 의해 결정적으로 정화되기라도 한 듯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문을 열었습니다. 웃기죠. 하지만 뭐, 그런 거죠…….

일전의 지역상공인 축제 때까지는 모든 일이 아주 좋은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군수가 그의 참모부와 당국자들에게 둘러싸여 남성합창단 콩쿠르를 주재하고 연설을 마친 다음 그의 개인비서 폴 아모가 각 수상자에게 메달을 건네주기 시작했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항상 사람들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질투와 경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마을의 모든 여성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몰미용(Mormillon) 마을 악단장이 자기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 합창단은 2등 상밖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설마, 모두에게 1등 상을 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개인비서가 메달을 건네자, 그는 그것을 비서의 얼굴에다 던지며 고함쳤습니다. “그 메달은 가지고 있다가 밥티스트에게나 줘버려. 내 것뿐만 아니라 1등 상도 줘야겠네.”

웃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자비롭지도 섬세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 불쌍한 여인에게로 향했습니다.

오, 선생님, 혹시 미쳐가는 여자를 본 적 있으신가요? ―아니요. ―우리는 글쎄,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그녀는 연거푸 세 번이나 일어났다가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도망치고 싶어도 자신을 둘러싼 그 많은 사람을 뚫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사람들 사이 어딘가에서 한 목소리가 다시 고함쳤습니다. “어이, 마담 밥티스트.” 그러자 희롱하는 사람들과 분노하는 사람들로 장내는 웅성거렸습니다.

그것은 폭풍과도 같은 소동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머리가 흔들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대뇌며 이 불행한 부인이 짓는 표정을 보려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남편들은 저마다 아내를 양팔에 안아 올려 그녀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 저기 파란 거?”하고 물었습니다. 조무래기들이 수탉 울음소리를 내 여기저기에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 전시라도 된 것처럼 화려한 안락의자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라질 수도, 움직일 수도 얼굴을 숨길 수도 없었습니다. 강한 빛이 눈을 태우기라도 한 것처럼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였고 언덕을 오르는 말처럼 숨을 헐떡였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무슈 아모는 그 무례한 사람의 멱살을 잡았고 끔찍한 소란 속에서 두 사람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중단되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 아모 부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모욕을 당한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만 용수철의 자극으로 모든 신경이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떨고 있던 젊은 여성은, 남편이 그녀를 붙잡을 틈도 없이 난간을 뛰어넘어 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다리 아래는 물이 깊었습니다. 끌어올리기까지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연히 그녀는 죽어있었습니다.


*


이야기꾼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그녀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성직자들이 교회 입장을 거부한 이유를 이제 아셨을 겁니다. 아아! 종교 절차에 따라 장례식을 치렀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왔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에 자살이 추가됐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가족들도 자숙했습니다. 게다가 여기서는 사제 없이 장례식을 치르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우리는 묘지문을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매우 감동해서, 흐느끼고 있는 불쌍한 남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관이 구덩이 속으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손을 힘껏 잡았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놀라서 나를 쳐다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장례 행렬을 따라간 걸 후회하지 않았다.


Madame Baptiste는 1882년 11월 28일 화요일 Gil-Blas 에 Maufrigneuse 라는 서명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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