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내가 바꾼다

좌절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

by 아우름언니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의도치 않은 실패와 좌절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시련들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제 모습도, 앞으로의 제 모습도 달라진다는 걸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IMF의 여파로 제가 몸담고 있던 유아교육용 게임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중국 수출을 목표로 했던 그 회사는 동업 구조였고, 저는 월급은커녕 빚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과테말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던 중 스페인어가 필요해 도움을 받았던, 과테말라에 이민 가 계시던 한 한국인 분께서 현지 한인 신문사에서 편집 일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하신 것이었습니다. 역시 인연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 다시 돌아오는 법입니다. 그 시절엔 빚 독촉으로 자살 소식이 연일 뉴스에 나올 만큼 힘든 시기였고, 저 또한 그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출장 중 어렴풋이 외국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던 터라, 저는 이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영어나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캐나다를 경유해 멕시코를 지나 22시간을 날아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중남미는 처음이라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습니다. 특히 관광 도시였던 옛 수도 안티과에서의 생활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답게, 길과 집, 건물들까지 모두 화려한 꽃들과 어우러져 마치 그림 속 장면 같았고, 화산 폭발로 무너진 건물들조차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따스한 햇살 속에 빛나던 그 도시의 모습은 지금도 종종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안티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치안이 불안했고, 걸어서 다니기 어려운 환경이라 어디를 가든 지인의 차량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당연한 문화처럼 여겨졌지만, 남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저에게는 큰 불편함이기도 했습니다.


신문사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고, 치열했던 게임 회사에 비하면 여유롭고 편안한 직장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던 저의 인생을 잠시 멈추고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치 긴 여행을 온 것처럼,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즐기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득, ‘남은 인생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에 능했던 저는, 늘 저에게 미용사가 어울릴 것이라 말씀하셨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과테말라에서의 미용 기술은 한국에 비해 다소 낙후되어 있었고, 요금은 높은 편이었으며, 한국인을 위한 미용실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제가 기술을 배워 이곳에 다시 온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과테말라에 머무르는 것이 의미 없어졌습니다. 당시 제 나이도 적지 않았기에,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바로 귀국 비행기 표를 끊었고, 도착한 다음 날 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미용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저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저는 하루도 낭비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았다면 과테말라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며 아름다운 관광지를 둘러보았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티칼 유적지,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벨리즈, 니카라과 같은 나라들—그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을 줄 알았기에 더 미루고 말았죠. 하지만 지금은, 그 기회는 이미 제 손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언젠가는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운 친구들도, 그 햇살 가득한 골목도요.

그 후로도 실패와 고통은 여러 차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좌절 속에 머무른 적은 없었습니다. 정승호 작가가 이야기했듯, 실패가 찾아왔을 땐 무조건 걸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며 땀을 흘렸고, 평소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실패에 매달리기보다는, 그 시간 속에서 천천히 저를 회복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는 ‘충분히 행복한 나’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저를 낮추며 오늘보다 빛나는 내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삶의 방향은 실패가 아니라, 그 실패를 바라보는 태도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기기로 했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믿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넘어졌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 지금, 오늘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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