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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Apr 28. 2024

분석가의 마음, 분석가의 윤리

믿을 수 있으면서도 이해가능한 커뮤니케이션

2020년 첫 스타트업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데이터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데이터가 흐르는 건 고사하고 기록도 제대로 되지 못하여  운영과 영업 모두 매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업무 흐름을 파악하고, 어떤 정보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할지 정의하고, 테이블을 설계하여 알음알음 배운 것들로 대시보드를 설계하고, 유지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4~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도 부족한 것도 많은 첫 데이터 업무였지만, 가장 아쉬운 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다시 돌아가도 그때 그 상황에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지만, 상대의 눈높이에서 설명하진 못했거든요.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뼈아픈 사례입니다.

속도와 깊이, 정합성과 사용성, 정밀함과 이해가능함은 대개 반비례합니다. 공식적으로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비공식적으로 프로덕트 분석가로 일한 시간이 쌓이고 나서야 이를 비로소 체감했습니다.

PM으로서 빠르게 결정해야 할 때도 있었고 그럼에도 분석가로서 자세하고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쉬운 설계나 얕은 해석이 '데이터로 일한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면, 너무 깊고 자세한 접근과 설명은 팀의 누구에게도 설득되지 못했습니다. 고객과 제품, 팀에 도움이 못 되는 건 피차 마찬가지였습니다. 분석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분석가의 편을 들어보자면, 때로 분석가의 제안이나 설명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모든 직업이 그렇듯 분석가에게도 직업윤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달하는 정보와 근거가 상대를 기만하거나 오도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알고자 하는 것은 제대로 알게 해 주려는 마음. 어떤 것을 감내하거나 기대하기로하고 의사결정을 내린 것인지 이해하여, 상대가 뒤늦게 후회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 분석가의 직업윤리 혹은 '분석가의 마음'이란 게 있다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4월부터는 조직의 전사 DA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PM에서 DA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전문가 분들만큼의 빼어난 기술은 없지만, 마땅한 직무랄 것도 없던 첫 스타트업에서도, PM으로서도, 일상에서도 늘 데이터를 다뤄왔으니까요. 사용자를 이해하고, 제품과 서비스의 가설을 검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더 상대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을, 필요한 수준으로 적용하기. 그러면서도 상대의 문제를 정말로 도우려는 마음은 잃지 않기. 어디까지가 직업윤리이고 어디까지가 나의 욕심인지 아는 일. 분석가의 마음이고 분석가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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