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중심은 곧 문제 중심이다
기획자 또는 PM/PO로 커리어를 시작하면 반드시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고객 중심으로 생각해야 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땐 고객의 말을 잘 듣고 요청사항을 빠짐없이 반영하는 게 곧 ‘고객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쨌든 제품과 서비스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고객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구현해 내는 것이 곧 친절하고 훌륭한 PM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곧 깨닫게 됩니다. 고객의 말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프로덕트는 조각조각 나뉜 기능들의 조합이 되어버리고, 정작 무엇을 해결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요. 그럼 대체 PM/PO가 고객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주니어 PM/PO들이 처음에 빠지기 쉬운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고객의 요청은 곧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그 요청사항을 빠짐없이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고객 중심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거 불편해요. 버튼 위치를 바꿔주세요.”
“다른 서비스처럼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고객이 던지는 이 말들은 마치 요구사항 명세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요청들은 그저 표면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고객은 제품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이 겪는 불편함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때로는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대로 해결책을 제안할 뿐입니다.
고객의 말은 ‘그들이 선택한 하나의 솔루션’일 뿐이며, 그것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제품이 고객의 요구에 휘둘려 방향을 잃고, 중복된 기능과 사용성 저하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고객이 자기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요청은 맥락 없이, 단편적으로 전달됩니다. 왜 불편한지, 어떤 상황에서 그런 경험을 했는지, 이 기능이 자신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하는지까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고객은 많지 않습니다. 마치 증상은 말하지만, 병의 원인은 말하지 않는 환자와 같습니다.
PM/PO는 이 흐릿한 증상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그 뒤에 숨어 있는 문제의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고객이 “이 버튼 불편해요”라고 했을 때, 정말 버튼 위치 때문인지, 아니면 전체 플로우가 비효율적인 건 아닌지, 혹은 정보 설계가 잘못된 건 아닌지를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고객은 문제를 겪은 사람이지, 그것을 진단하고 해결할 사람은 아닙니다. 고객이 겪은 불편함의 진짜 이유를 찾는 탐색자, 그걸 바탕으로 적절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설계자는 PM/PO여야 합니다.
고객의 말을 잘 듣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말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내느냐입니다. 이해란 단지 귀로 듣는 것을 넘어, 맥락을 파악하고 의도를 유추하며,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수동적인 수용이 아닌, 능동적인 분석의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파일 업로드가 느려서 너무 불편해요”라고 했을 때, 정말 업로드 속도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피드백이 없는 로딩 화면 때문에 느리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혹은 업로드 이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흐름이 단절되어서 그렇게 말한 것인지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설문과 인터뷰, UT(Usability Test) 등에서 고객의 배경과 사용 환경, 문제의 맥락과 라이프 스타일 등을 이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고객 요청이 다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그 문제를 해결할 ‘가치’가 있는가입니다. 그 요청이 정말로 다수의 고객에게 영향을 주는가? 그것이 해결된다면 고객 경험이 본질적으로 나아지는가?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우리의 제품이 향하는 방향성과 일치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요청을 받아주려 하고, 그때마다 사소한 개선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문제는 놓치게 됩니다. PM은 CS 센터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 때로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진짜 고객 중심일 수도 있습니다. 단기적인 만족보다, 장기적인 가치 제공이 더 중요하니까요.
고객 중심이라는 말은 결국 고객의 ‘문제’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진짜로 겪고 있는 불편함을 정의하고, 그 문제를 명확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고객이 제안한 솔루션은 힌트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PM/PO는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인 동시에, 고객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고객 중심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되뇌어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고객의 요청인가, 아니면 고객의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