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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님, 그 질문은 정말 데이터로 답할 수 있나요?

PM/PO에게 숫자보다 중요한 건 문제 정의 연습

by 플래터

데이터로 답이 나오는 질문은 생각보다 적다


PM/PO로 처음 일을 시작하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일단 데이터로 확인해 보자”는 말입니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 당연하고 또 보편화된 지금, 이 말은 겉보기엔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누군가의 감이나 경험 혹은 '뇌피셜'에 비해 숫자는 객관적이고 또 정확할 테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때로 "데이터로 확인하자"는 말은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라기보다는, 자신도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몰라 일단 데이터에 공을 넘김으로써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불확실함 앞에서 사람은 불안하고, 그 불안을 숫자로 달래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숫자는 만능 해결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절한 질문 없이 끌어온 숫자는 더 큰 착각을 낳기도 합니다.


정량보다 정성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최근 몇 년간 부쩍 여러 부트캠프나 강의에서 PM/PO를 대상으로 강조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데이터 리터러시와 데이터 분석 스킬입니다. SQL이며 Python이며 머신러닝이며 온갖 화려하고 멋진 기술을 '데이터 역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애석하게도 좋은 PM/PO는 데이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데이터가 필요한 순간과 대화나 관찰, 추론이 더 효과적인 순간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규 기능을 출시했는데 사용자 반응이 생각보다 미적지근합니다. 이때 "데이터를 봐야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벤트 설계 및 로깅이 잘 되어 있다면 유입, 이탈, 전환 등의 수치를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숫자들이 지금 우리가 가진 궁금증과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요? 예컨대 수치만 보면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왜 눌렀는지 혹은 왜 중간에 멈췄는지

사실 그들은 뭘 기대했는지

그들이 경험하는 문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런 질문은 데이터를 열어봐도 숫자로 답이나 단서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용자 설문이나 인터뷰, VOC, 사용 방식 관찰, 그리고 문맥에 대한 상상력과 해석이 훨씬 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문제 정의의 문제일 수 있다


데이터로 확인한다는 말은 얼핏 똑똑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질문이, 정말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검토가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검토 없이 무작정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분석을 시작하면, 결국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PM/PO로서 가장 강조되는 '문제 정의 능력'은 비단 "사용자의 문제를 5 why로 파고들어 실체를 정의해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제 정의는 내가 현재 단계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이며, 이를 풀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무엇인가 구상하고 설계하는 능력입니다. 이를 데이터 분석에 접목하면, 어떤 질문은 데이터로 답할 수 있고, 어떤 질문은 사람에게 직접 물어야 하고, 또 어떤 질문은 '지금은 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주니어 PM/PO들이, 혹은 사수 없이 일하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듯, '일단 데이터로 확인해 보자'는 말에 기대 버립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먼저 겪은 입장에서 돌이켜보면, 이런 말 대개 이렇게 번역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뭔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려면 숫자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럴 땐 한 박자 멈추고, 이렇게 자문해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질문은 팩트 기반의 답이 가능한가?

이 질문에 정량적인 수치가 실제로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가?

아니면 질문 자체가 너무 흐릿해서, 수치를 모아도 더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을까?


당신은 지금 어떤 질문을 하고 있나요?


SQL이 되었든 머신러닝이 되었든 이를 통해 구해낸 숫자는 결국 도구입니다. 그리고 도구는 쓰는 사람이 목적을 분명히 할 때에만 가치가 있습니다. PM/PO의 일은 때로는 매우 모호하고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그 모호함과 불투명함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기획자의 태도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고, 필요한 단서를 하나씩 찾아나가는 사람. 어쩌면 그게 진짜 일 잘하는 PM/PO일지도 모르고요.


만약 여러분이 지금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방식으로 답을 찾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싶다면, 데이터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이건 정말 데이터로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인가?”


이 질문이, 우리를 조금 더 현명하고 분별력 있는 PM/PO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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