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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 그러나

멘토링과 강의, 강연 등을 하는 이유

by 플래터

지난 주말, 모교를 방문해 PM/PO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짧은 특강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강의나 강연이 그렇듯, 참여자들이 취업준비생이라는 사실 외에는 사전에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럴 때면 저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속에 한 명의 고객을 구체적으로 떠올립니다. 바로 4~5년 전의 제 자신입니다.

처음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었을 때는 한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존재하는 줄도 몰라 찾아 헤맬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지식과 관점, 방법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감복과 허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동시에, 사수도 선례도 없이 분투했던 이전 시간이 모두 헛된 것만 같아 울분이 치밀기도 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입니다. 비록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더 먼저, 더 잘 이해하고 체득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새로 알게 된 것들, 후회한 일들, 곱씹어 이해하게 된 것들을 글에 담았습니다.

그 마음이 통했을까요. 그 뒤로 햇수로 4년째 여러 교육기관 및 콘텐츠 플랫폼과 협업하며 기고와 강의, 강연, 멘토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 출간도 준비 중이고요. 그러나 때와 장소, 주제와 방식에 상관없이 언제나 몇 해 전의 저를 떠올리며 준비합니다.

언젠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우리 스스로일 뿐”이라는 어떤 종교의 말씀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던 시기에는 그 말씀이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남에게 기댈 생각은 하지 말라’는 식으로 들려 야박하고 속상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구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나를 닮은 이들만큼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의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닮은 타인도 결국 '나'라는 마음. 적어도 이들만큼을 구할 수 있고 또 구하고 싶다는 마음. 어느 종교의 절대자는 그런 마음마저 부질없는 짓이라며 꾸짖을까요?

생각해 보면 PM으로 일하며 효능감이나 만족감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시기에, 그럼에도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와 멘토링이었습니다. 과거의 나를 닮은 이들을 위해 한 일이 결국 제 자신을 구한 셈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해석일까요. 그러나 저는 이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라는 걸요. 다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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