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비스 기획자의 뒤늦은 회고 (3)
위 글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서비스가 출시된 뒤, 그럼에도 대시보드라고 할 법한 것을 세팅했다. 우리가 가진 건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이 기록하고, 사람이 수정하고, 사람이 관리하는 데이터였다. 오프라인으로 고객을 받아 오프라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동산 운영 서비스의 한계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데이터를 통한 가설 검증, 그로스 growth 에 관심 있던 나는 두 달 가까운 시간에 걸쳐 아래의 지표를 볼 수 있는 대시보드를 세팅했다.
- 지점별 현재 이용자 수 ( (월 단위 정기구독 서비스로, 구매 시점이 아닌 시작일과 종료일에 따라 이용자 수가 변화했다)
- 월별 신규 고객 및 이탈 고객의 수
- 지점별 현재 점유율 : 지점별 수용인원 대비 점유된 비율
- 서비스 유형별 현재 이용자 수 (코 리빙, 코워킹, 그리고 멤버십 서비스 등으로 입주자마다 서비스 유형이 상이했다)
- 사용자별 이용기간 및 전체 이용기간의 평균 등
- 특정 시점의 이용자 수 (월 단위 정기구독 서비스로, 단발성 구매 서비스와 다른 지표가 필요했다)
- 특정 시점의 지점 공실률 : 해당 시점에 비어있는 룸이 몇 개인가?
- 특정 기간의 지점 가동률 : 해당 기간 동안 해당 공간은 얼마나 오래 비어있었나? (매출을 일으키지 못했나?)
서비스 론칭 후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나, 실제로 눈앞에서 돌아가는 대시보드를 확인하자 뿌듯함 같은 감정을 느꼈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숫자들.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차트들. 빼곡한 원본 데이터들. 오류마저도 달게 보였다.
나는 이걸로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환상에 부풀어있었다.
숫자와 차트, 그리고 원본 데이터들.
나는 이걸로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환상에 부풀어있었다.
핵심 지표가 없다고 해서 모든 지표가 무용하거나 불가능한 건 아니다. 회사의 운영 차원에선 매출을 추적할 수 있고, 서비스의 운영 차원에선 사용자의 수, 문의량 등은 필요하다. 핵심 지표가 없어도 뭔가 보이긴 한다. 다만 그게 끝이다.
핵심 지표를 정의하지 않은 대시보드는 아래의 문제에 봉착했다.
1. 보이는 건 있다. 다만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짜 중요한 지표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으니까.
2. 서비스의 성장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이 숫자로도 증명되길 바란다. 다만 그래서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짜 중요한 지표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으니까.
3. 수동으로 기록, 관리되는 원본 데이터에는 오류가 잦았다. 그만큼 대시보드의 수정, 가공도 잦았다. 오류가 날 때마다 속으로 혹은 겉으로 짜증을 내고, 시간을 할애했다. 어떤 오류는 가볍게 넘겨도 될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진짜 중요한 지표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으니까.
핵심 지표가 없어도 뭔가 보이긴 한다. 다만 그게 끝이다.
왜냐하면 진짜 중요한 지표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았으니까.
만에 하나 다시 돌아간다면, 돌아가야 하거나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할까.
나는 무조건 핵심 지표부터 정의하겠다. 그리고 이를 팀과 회사와 함께 합의한 후, 이 지표를 관리하고 성장시키는 데에 필요한 업무만 하겠다. 왜냐하면 핵심 지표 이외의 지표는 그저 허영이고, 관리 비용을 일으킬 뿐이니까. 핵심 지표의 정의 없이는 대시보드를 세팅하지 않겠다.
Step 1 핵심 지표를 정의하고 합의하기 위해 아래의 단계로 업무를 접근하겠다.
1. 우리 서비스는 어떤 구조와 흐름 flow으로 이루어지는지 파악한다
2. 핵심 지표를 정의한다. 이를 정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면 고객을 만나겠다.
3. 이를 팀, 회사와 합의한다.
4. 이를 수집, 관리하기 위한 대시보드와 운영을 세팅한다. 나머지 지표는 수집, 관리에 비용이 크다면 과감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Step2 우리 서비스의 핵심 지표를 정의하기 위해 아래의 내용을 파악, 정리한다
- 서비스의 발견부터 회원가입, 구매, 첫 시작, 연장 등 우리 서비스의 구조와 흐름을 정리한다
- 그 서비스 구조, 흐름 내에서 우리 사용자가 서비스에서 핵심가치를 경험하는 순간, 혹은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파악한다.
- 이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시 고객을 만나겠다
- 이를 우리는 어떤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지 정의한다. 혹은 직접 측정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추론할 수 있는지 정의한다.
Step 3 최종적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팀, 회사에 공유하고 합의하며 이를 모든 활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예시)
- 고객 인터뷰를 통해 알아낸 사실은, 멤버십을 3개월 이상 연장하여 사용하는 사용자의 경우 공간 출입 빈도 또는 출입하는 지점의 수와 상관이 없었다
- 오히려 이들은 다른 멤버와의 직접적인 교류 또는 리테일 할인을 주요 이유로 삼았다
- 또한 이들은 멤버십 가입 첫 주에 모두 리테일 할인을 이용한 경험이 있고, 첫 달 사용이 종료되기 전에 다른 멤버와 업무,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나눈 경험이 있다
▶ 따라서, 멤버십 서비스의 핵심 지표는 "첫 주 내에 리테일 할인 경험 여부" 및 "첫 달 내에 다른 멤버와의 교류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
핵심 지표의 정의 없이는 대시보드를 세팅하지 않겠다.
세상의 모든 프로덕트/서비스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그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지표를 사용할 뿐이다. 지표는 서비스를 성장시키기 위해 참조하는 값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지표가 서비스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정의와 합의는 당연히 필요하다.
고객의 문제 해결과 관련된 지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이런저런 숫자를 파악하려고 한 시도는, 막대한 시간낭비이자 데이터에 대한 허영뿐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