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가정의 민수와 선생님들의 이야기 >
학생들 관리가 잘되는 중산층 지역에 근무할 때 일이었습니다.
개학 첫날,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을 가진 민수였습니다. 민수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작았지만, 웃는 모습이 참 해맑았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민수는 크게 인사하며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저는 민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민수는 다문화 가정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한국분이고,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오셨습니다. 민수 부모님은 둘 다 공장에서 일하셨고,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셨습니다. 민수에게는 누나와 형이 셋이나 있었습니다.
작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민수를 많이 예뻐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부모님과 연락이 잘 되지 않을 테니 지역아동센터 선생님께 연락드리면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는 학생을 맡아본 적이 없는 터라, 조금 의아했습니다.
아침 등교 시간, 민수는 씩씩하게 걸어와서 교문을 지키시는 경비 아저씨께 큰 소리로 인사했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래, 민수야. 오늘도 혼자 왔니? 밥은 먹었어?"
"네! 김밥 먹었어요!"
"그래, 잘했다. 오늘도 공부 열심히 해라."
민수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앞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간다고 했습니다. 저도 출근하며 본 적 있는 곳이었습니다. 민수는 지역아동센터에 어릴 때부터 다녔다고 했습니다. 형도 누나도 함께 다녔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방과 후, 교실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민수 아동보호센터 선생님입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쩐 일이세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어서는 어느 정도 연세가 있으신 분 같았습니다.
"선생님, 민수가 다시 숙제 검사받으러 교실로 갈 거예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너무 대충해 간 것 같아서요."
"아, 그러셨군요. 네, 알겠습니다."
곧이어, 민수가 교실로 왔습니다.
"어, 민수야. 무슨 일이니?" 제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센터 선생님이숙제 글씨 제대로 못 썼다고 다시 검사받아 오라고 하셨어요."
"아, 그래?"
다시 써 온 공책을 보니 썼던 걸 지우고 깨끗하게 다시 쓴 글씨가 무척 바르고 예뻤습니다.
그 옛날 우리 선생님들이 알려주셨던 바른 글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수는 저에게 사과를 하고 갔습니다. 센터 선생님이 시키셨는지 어딘가 외운 말투라 귀여웠습니다.
"선생님, 글씨를 잘 못 써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민수를 보내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와, 정말 잘 돌봐주시네. 예전 우리 선생님같잖아.'
그리고 민수를 잘 돌봐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월 말,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긴팔 옷을 입고 등교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새로 산 듯한 패딩을 입고 왔고, 어떤 아이는 작년에 입던 점퍼를 입고 왔습니다. 그런데 민수는 여전히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민수야, 춥지 않니? 긴팔 입고 와야지."
"아, 괜찮아요 선생님! 저 안 추워요!"
민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팔에 소름이 돋아있는 게 보였습니다.
다음 날도 민수는 반팔을 입고 왔습니다. 저는 걱정되어 민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보세요? 민수 엄마이세요? 저 민수 담임 선생님인데요..."
"아,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어머니는 서툰 한국말로 대답하셨습니다.
"요즘 날씨가 추운데, 민수가 긴팔 옷이 없나요?"
"아... 미안해요, 선생님. 민수 아빠, 나, 지금 공장에서 일해요. 야근 많이 해요. 민수 옷 사러 갈 시간 없어요. 이번 주말에 꼭 사줄게요."
"아, 네. 괜찮습니다. 그럼 주말에..."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작년 담임 선생님께서 교실로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 선생님, 민수 좀 학교 끝나면 저희 반으로 보내주실래요?
저는 답변했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민수는 하교길에 작년 담임 선생님 반에 들른 후, 잔뜩 옷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우리 반에 와서 제게 자랑했습니다.
"선생님, 저 옷이 엄청 많이 생겼어요!"
"와, 민수 좋겠다. 내일은 따뜻하게 입고 오렴."
"네, 선생님, 내일 봐요."
민수는 신이 나서 옷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부터 민수는 그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입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마주친 민수의 작년 담임 선생님께 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대단하세요. 저는 제가 챙겨줄 생각을 못 했어요."
"아니야, 부모님이 신경 쓰기 바쁘셔서 내가 작년부터 조금씩 챙겨준 거야. 별거 아니야."
"그래도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혹시 부모님이 기분 나빠하진 않으세요?"
"응, 괜찮더라구. 많이 예뻐해 줘, 우리 민수."
작년 담임 선생님은 저하고도 같은 학년을 해서 친분이 있는 선생님이십니다.
내년이면 퇴직이시라 경력이 30년 이상되신 베테랑 교사입니다.
어느 날은 작년 돌봄 선생님이 민수를 보내달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무언가 도움을 주시기 위함이시겠지요. 다행인 것은 민수가 이런 도움들을 진심으로 감사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 학생들에게 잘해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언제든 학부모가 돌변해서 "저희 아이 거지 취급하세요? 왜 부모한테 허락도 없이 이러세요? 저희 애 기죽잖아요."라고 따질 수도 있는 세상이거든요.
도움을 주려다 되려 신고를 당할 수도 있는 현실에 저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옛날 오지랖 넓던 그 마음을요.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선물을 교환했습니다. 민수도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접이식 메모지였는데, 민수가 손수 색칠하고 꾸민 것이었습니다.
파티가 한창일 때, 민수가 제 옆으로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 학교에 계속 다녀도 되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민수야, 무슨 소리야? 당연히 다녀야지."
"친구들이... 저랑 잘 안 놀아줘서요. 제가 피부가 까맣고, 엄마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민수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민수야, 선생님이 봤을 때 민수는 참 착한 아이야.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민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센터 선생님, 작년 선생님, 돌봄 선생님, 그리고 나도."
"정말요?"
"그럼, 민수는 우리 학교의 소중한 학생이야."
민수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참 예뻤습니다.
민수는 부모님이 바빠서 신경 써주지 못해도, 주변 어른들이 민수를 돌봐주고 계셨습니다. 옷을 챙겨주고, 공부를 가르쳐주고, 간식을 챙겨주고. 그 모든 것들이 민수를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어쩌면 민수에게는 부모님 외에도 수십 명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셈이었습니다.
1월 겨울방학식 날.
민수는 교실에서 가장 먼저 저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저 이번 학기 성적 많이 올랐어요! 수학 80점 받았어요!"
"정말? 우와, 대단한데?"
"센터 선생님이 매일 가르쳐주셔서요. 선생님, 저 다음 학기에는 꼭 100점 받을 거예요!"
민수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습니다.
민수는 지금도 씩씩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어른들은 여전히 민수를 따뜻하게 돌보고 계십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민수를 보면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비록 부모님이 바빠서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도, 주변 어른들의 사랑으로 민수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민수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자신이 받았던 이 따뜻함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사랑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