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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코알라 Jul 14. 2023

나르시시스트 자녀의 어린시절

엄마는 왜 어린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을까


나의 어린시절은 불안함이 가득했다

불안함과 행복을 비율로 따지자면 9:1일정도로

행복한 날이 적었다..


모든 나르시시스트 자녀가 그렇듯

불안과 불행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었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세뇌를 시켰기 때문이다


어릴적 엄마가 나에게 제일 자주 했던 말은 모두 부정적인 말 뿐이다


그 중 제일 빈도가 높았던 건

“너 살 너무 쪘어”

“누구를 닮아 그렇게 못생겼니”

“허벅지 두꺼운 것 좀 봐”

“너네 아빠 닮아서 피부가 너무 까매 여자는 피부가 하얘야 하는데..”

등등 외모적인 발언이 제일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학창시절이 인생에서 제일 날씬한 때였다.. 실제로는 전혀 뚱뚱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내가 예쁘다거나 괜찮은 축에도 못 낀다고 생각 했었고

거울을 보면 스스로도 너무 못나보여서

괴롭기만 했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엄마를 위해

광대와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자처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에게 아무런 관심도 칭찬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학교에 가야하지만

엄마가 아빠 때문에 힘들어 하면 새벽까지 앞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엄마가 힘들어하면 어떻게든 웃겨주고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엄마에겐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인정을 받긴 커녕 그게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 그렇게 해주지 않는 날엔

내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나쁜년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나는 끝없는 엄마의 인정을 받으려 노력했다


내가 더 노력하면 되겠지..

내가 좀 더 잠 안자고 엄마 이야기 들어주면

언젠간 나에게 고마워하겠지..


그런 어린시절을 보내왔으니

당연히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인간관계가 원활할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내 자신만을 탓해왔다


절대 우리 부모가 잘못되어서

내가 이렇게 자랐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가스라이팅 한대로

엄마는 먹여주고 재워줬으니 그 이상의 감정적인건 알아서 해야한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정말 그 말대로 나머지 감정적인 것들은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으며 버텼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공황장애..

깨어 있을때는 공황 발작중에 하나인

갑자기 정신이 끊기면서 내가 무슨짓을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이는 일을 자주 겪었고


잘때는 숨이 멎어서 곧 죽기직전까지 가야 숨이쉬어졌었다


나는 몸이 그런 증상을 보내는데도

그냥 내 잠버릇이 문제인가보다 정도로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냈었다


엄마가 수없이 가스라이팅 했던 말 중 하나가

“다들 불행하고 힘든데 꽁꽁 숨기는거니까 너도 그렇게 해야해” 였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나처럼 집에서도 힘들고 몸에

그런 공황 증세도 가끔와주고 그러는줄 알았다


정말 모든게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영향인걸

깨달은지 얼마 안된 지금

이곳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나처럼 본인이 혹사 당하면서도 혹사 당하는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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